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의 ‘레퀴엠’은 마약에 서서히 중독돼 가는 인간의 모습을 비극적으로 그린 영화이다.
암페타민 중독으로 점차 폐인이 되어 가는 여인을 엘렌 버스틴은 최고의 연기로 표현하고 있다. 그녀의 아들인 해리와 그의 애인 매리온 역시 점차 마약에 중독되어 가고 돈이 떨어진 해리는 결국 매리온에게 몸을 팔아 약값을 대도록 요구한다.
이처럼 인간을 파멸시키는 마약은 우리의 뇌를 조종하여 뇌가 그 물질의 공급을 지속적으로 요구하는 상황을 만든다. 중독 물질에 의한 뇌의 영향 중 중요한 것은 뇌의 신경전달물질의 변화인데 특히 도파민, 세로토닌, 니코틴, 카나비노이드 등이 중요하다.
최근 기로스나 레덴트 같은 학자들은 뇌 신경세포에 도파민, 카나비노이드, 니코틴 등의 수용체(受容體)가 발현하지 못하도록 유전자 조작을 한 쥐에게는 모르핀이나 마리화나 같은 마약을 투여해도 중독 증세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고했다.
반면 세로토닌 5HT1b 수용체가 발현하지 않는 쥐에게서는 코카인에 대한 중독 증세가 더욱 심해진다. 즉 이런 신경전달물질의 균형 변화에 의해 마약을 하면 기분이 좋아지고 마약을 더욱 원하게 되는 것이다.
한편 마약을 열망하는 행동은 오래 지속되므로 마약은 우리로 하여금 자신을 기억하도록 만드는 것 같다. 최근 텍사스 대학의 네스트러 교수는 쥐에게 마약을 중독시키면 뇌의 중격측좌핵이라는 부위에 FosB라는 물질이 쌓인다는 것을 밝혔다.
그런데 이 물질은 마약을 더 이상 주지 않아도 증가한 상태로 계속 신경세포에 남아 있는다.
FosB가 궁극적으로 유발하는 물질이 무엇인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아마도 신경세포의 글루타민 수용체일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쥐에게 코카인을 투여하면 글루타민 수용체가 활성화되어 글루타민 분비 신경의 활동이 증가한다.
우리의 기억 활동은 기억 중추인 해마에서의 글루타민 수용체의 활성화와 밀접하게 연관된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면, 마약은 여러 신경전달물질의 변화 그리고 글루타민 수용체의 활성화를 통해 우리가 그를 몹시 원하고 기억하도록 하는 것 같다.
이런 점에서 모르핀을 만들어 내는 식물의 이름이 당나라 현종을 끝없이 유혹하고 파멸시킨 양귀비인 것은 너무나도 적절하다.김종성 울산대 의대 서울아산병원 신경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