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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포럼]한영우/믿음의 정치, 記錄의 정치

입력 | 2003-01-05 18:36:00


100년 앞을 보려면 100년 뒤를 보라는 말이 있으니, 지난 역사를 보면서 미래의 덕담을 나누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 역사에서 가장 연구하기 불편한 시대는 우리가 사는 대한민국이고, 가장 연구하기 편한 시대는 조선이다. 조선시대에는 관청마다 업무일지인 ‘등록(謄錄)’이 있고, 여러 관청의 ‘등록’을 통합한 ‘시정기(時政記)’가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왕과 신하들의 국무회의가 예문관 사관(史官)과 승정원 주서(注書)의 손을 통해 말과 행동이 낱낱이 기록되었으니, 지금으로 치면 녹음과 녹화가 동시에 이루어진 셈이다. 이것이 사초(史草)로 뒷날 실록을 편찬할 때 기본자료가 되었다.

▼기록관 없이 임금 獨對 못해▼

실록을 보면 왕과 신하들이 정책결정 과정에서 벌인 찬반 결론이 실명(實名)으로 기록되어 있고, 기록관 없이 임금이 신하를 만나는 독대(獨對)는 원칙적으로 금지되었으니 이는 밀실정치를 막고 정치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함이었다.

왕명을 출납하는 승정원도 출납한 문서와 관료들이나 지방 유생들이 올린 상소문을 매일매일 그대로 기록했다. 그것이 ‘승정원일기’다. 각 관청의 하급 관리들이 하는 일은 주로 기록이었으니 그 결과 조선왕조는 세계 역사상 유례가 없는 기록 천국이 된 것이다.

정(政)이라는 글자는 원래 정인(正人)이라는 말이다. ‘사람을 바르게 하는 것’이 정치인 만큼 정치의 목표와 수단은 도덕에 바탕을 두고 있다. 도덕정치는 ‘신뢰의 정치’이기도 하다. 백성이 정치를 믿지 않게 되면 그 정치는 이미 정치가 아닌 것이다.

조선후기 최대의 민생문제가 군포(軍布·병역을 면제해주고 대신 받아들이던 삼배나 무명) 불평등이었는데 이를 해결한 것이 영조의 균역법(均役法)임은 잘 알려진 일이다. 이때 신하들이나 유생들은 자신들에게도 군포를 지우는 호포제를 반대했으나 영조는 창경궁 홍화문에 두 번이나 나가 백성들의 의견을 직접 묻고 호포제를 실시했다. 유생들은 양반과 노비가 함께 호포를 내는 것은 명분을 무너뜨리는 것이라고 반대했으나 영조는 양반이나 노비나 모두가 나의 적자(赤子)라고 하면서 “공자가 말하기를, 병(兵)을 버리고, 식(食)을 버릴지언정, 백성의 믿음(信)은 버릴 수 없다. 믿음이 없으면 정치는 무너진다. 내가 이미 한 필(疋)을 감하겠다고 말했는데 어떻게 백성을 배신할 수 있겠는가”라면서 양반들을 설득했다.

일반 백성이 정치를 믿게 해야 한다는 생각은 영조만이 아니라 조선 정치의 기본 철학이었다. 조선시대 유교정치의 최대 성과는 바로 정치에 대한 일반 백성의 신뢰를 높인 것이었다. 사전(私田)을 공전(公田)으로, 사선(私選)을 공선(公選)으로, 사견(私見)을 공론(公論)으로 바꾸는 개혁을 추진한 것도 국가의 공공성과 공익성을 높여 정치에 대한 믿음을 얻으려는 것이었다.

이 밖에도 상피제(相避制)와 분경금지법(奔競禁止法)으로 관료들의 근친이 이권운동을 하지 못하게 막고, 부정부패한 관리의 자식은 과거를 치르지 못하게 하는 등 공익성을 지키기 위한 제도를 헤아릴 수 없이 많이 시행했다. 요즘 말로 하자면 인치(人治)가 아닌 시스템정치를 통해 정치의 도덕성을 확보하려 한 것이 바로 조선왕조요, 그것이 519년 왕조의 장수를 가져온 비결이다.

▼밀실서 이뤄지는 일 없어야▼

조선의 정치와 요즘 정치를 비교해 보면 역사가 발전하는지 후퇴하는지 참으로 확신이 서지 않는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가 올 때 당시 경제기획원장관은 외환위기를 대통령에게 보고했다고 주장하고 대통령은 그런 보고를 받은 일이 없다고 하여 국민을 어리둥절하게 했다. 옛날 같으면 좌의정이 임금을 만나 국정을 보고했는데 어떻게 기록이 없을 수 있는가. 그뿐만이 아니다. 대한민국에 ‘실록’이나 ‘대통령비서실일기’가 있는가. 있다 하더라도 과연 얼마나 진실된 기록일까. 이러니 대한민국사 연구가 가장 연구하기 힘든 시대가 된 것이고 정치불신이 고질병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겐 희망이 있다.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실록’을 만든 역사가 있고 믿음의 정치를 펴려고 시스템정치를 발전시킨 선조들이 있었으므로.

한영우 서울대 교수·한국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