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우량기업인 포스코는 사외이사들이 기업경영에 관한 의사결정에 활발히 참여하는 기업으로 꼽힌다. 사내이사보다 사외이사가 더 많고 이들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틀도 잘 갖춰져 있다. 이사 추천 및 평가위원회를 비롯해 재정 및 감사위원회, 운영위원회, 경영위원회 등 4개 위원회가 구성돼 있어 사외이사들은 이를 통해 중요 경영 사안에 대해 발언권을 행사한다.
작년에는 신규사업 진출 건에 대해 전망이 불투명하다며 제동을 걸기도 했다. 영국의 금융월간지 ‘유로머니’는 이머징마켓 650개 기업을 대상으로 기업지배구조를 평가해 포스코를 국내기업 중 1위, 전체기업 중 2위로 선정했다. 이유는 ‘이사회의 독립적 역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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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최태원 회장은 평소 “바람직한 기업상은 재무구조나 사업구조 이상으로 기업지배구조가 좋아야 한다”면서 “특히 기업지배구조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이 이사회”라고 얘기한다. 오너의 이 같은 의지가 반영된 듯 SK는 상당수 계열사가 법적인 설치 의무가 없는 감사위원회 등을 운영하고 비상장계열사에도 사외이사를 두고 있다.
▽이사회, 거수기로 머물면 안 돼=외환위기 당시 한국 기업의 부실화를 부른 원인을 따질 때 도마에 가장 자주 오른 게 기업 내부의 경영감독시스템이었다. 대주주의 전횡을 견제하지 못한 이사회가 문제였다는 것.
이 같은 문제의식 위에 기업의 경영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여러 제도가 도입되면서 이사회는 독립성이 크게 강화됐다. 자산 2조원 이상인 상장법인이 이사회의 절반 이상을 사외이사로 두도록 한 건 세계 어디에 내놔도 뒤지지 않는 선진 제도다. 그러나 작년 현대상선의 대북 비밀지원설 의혹 사건에서 드러났듯 많은 기업에서 이사회는 중요 의사결정에서 배제되거나 ‘거수기’에 머물고 있다.
작년 8월 한국상장회사협의회 조사 결과 국내 상장기업의 대부분은 최고경영자(CEO)가 이사회를 지배하고 있어 이사회의 경영감독 기능이 제대로 발휘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대상 기업의 65.3%는 이사회에 올리는 안건을 지배주주나 오너, CEO의 지시에 의해 작성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상당수 기업에선 중요 의사결정이 이사회와 별도로 사내 임원들이 참석하는 집행위원회에서 내려진다.
▽사외이사, 장식품에 그치면 곤란=도입된 지 5년이 지난 사외이사제도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도 있지만 한편으론 ‘장식품’ 역할에 그치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S그룹 계열사의 사외이사를 맡고 있는 한 교수는 “회사측에서 오후에 이사회가 있으니 나와달라는 연락을 받고 나간 적도 있다”면서 “나가면 안건에 그냥 사인만 하라고 하기도 한다”고 털어놓았다.
사외이사의 임면 자체가 독립적이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개 CEO와 가까운 사람이 사외이사로 선임돼 애초부터 독립성을 기대하기 힘든 형편이다. ‘99%의 의안 찬성률’이 그 결과다.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김상조 소장은 “이사의 선임뿐만 아니라 평가 및 보상, 책임 부분에 대한 보완이 필요하다”며 “보수 공개, 집단소송제 등도 적극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명재기자 mj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