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크리트 벽으로 둘러싸이고 각종 쓰레기로 오염됐던 도심 하천들이 주민과 당국의 공동 노력으로 하나 둘 되살아나고 있다. 자연형하천 복원사업으로 생태계가 되살아난 전북 전주시 전주천 가에서 기전여중 학생들이 ‘하천체험교실’에 참여하고 있다. -사진제공 시민행동21
《동아일보는 유엔이 올해를 ‘세계 물의 해(International Year of Fresh Water)’로 정한 것을 계기로 물의 중요성을 재인식하기 위한 기획시리즈를 시작한다. 매주 1회 게재되는 이 시리즈는 전지구적인 ‘물 기근’에 대처하기 위해 수자원을 보호하고 아끼며 개발하자는 메시지를 담게 된다. 이를 위해 동아일보는 특별취재팀을 구성해 미국과 유럽, 일본 등을 현지 취재하는 한편 국내의 상황도 점검했다.》
▼하천에 생명을 불어넣자▼
일본 미에(三重)현 우에노(上野)시를 가로지르는 오토(大戶)강은 일본에서도 가장 더러운 하천의 하나로 꼽힌다. 1만6000여명이 거주하는 우에노시에는 하수처리시설이 없어 가정에서 버리는 생활하수가 그대로 흘러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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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강의 연평균 생물학적산소요구량(BOD)은 70ppm이 넘는다. 상수원으로 쓰는 1급수의 BOD가 1ppm 이하인 것에 비춰 보면 ‘죽은 물’이나 다름없다. 문제는 오토강이 흘러드는 요도(淀)강을 오사카(大阪) 등 주변지역 1400여만명이 식수로 사용한다는 점이다.
당장 하수처리시설 건설에 착공하더라도 효과를 보려면 수십년이 걸린다는 게 일본 국토교통성의 고민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2001년 우에노 시민들과 환경단체들이 발벗고 나섰다. 독자적인 정화시설 설치를 국토교통성에 제안한 것이다.
시민들은 강물이 플라스틱조각들 사이로 흘러 오염물질이 제거되도록 하는 접촉산화시설 만들기에 나섰다. 또 이 시설을 통과한 물이 갈대 등이 심어진 550여평의 식물밭을 거치도록 해 부영양화를 일으키는 물 속의 질소나 인이 저절로 걸러지도록 하는 시설도 마련 중이다.
시민들은 접촉산화시설을 만들 플라스틱조각을 마련하기 위해 보육원과 중고교, 슈퍼마켓, 시청 등에서 요구르트 빈병 23만여개를 모으는 대대적인 운동을 벌였다. 두 시설은 이 달 중 완공될 예정이며 시설의 유지 관리는 시민들이 직접 맡게 된다.
환경단체 ‘나바리(名張)강 모임’의 가와카미 아키라(川上聰) 사무국장은 “오토강 정화시설이 가동되면 BOD가 30ppm 이하로 떨어질 것”이라며 “설치비용은 2700만엔으로 하수관을 완비하는 데 드는 27억엔의 1%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주민 참여가 생명=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돈을 들여 하천을 살려도 주민들이 나서지 않으면 효과를 거두기 힘들다. 맑은 강을 유지하는 힘은 주민에게서 나오기 때문이다.
국내의 경우 부산 온천천과 전북 전주천, 경기 수원천이 주민과 시민단체의 참여에 의해 자연형 도심하천으로 복원된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전주천은 ‘시민행동21’ 등 시민단체들이 ‘자연과 인간이 함께 사는 도심하천을 만들자’며 발벗고 나서 되살리는 데 성공했다. 전주시에 요구해 10여차례나 설계를 바꿨고 60여차례 설명회를 열어 시민들을 설득했다.
사업 착수 2년 만인 2002년 말 전주천 사업구간 7㎞에는 맑은 물에서만 산다는 쉬리가 돌아왔다. 1995년 정부의 조사보고서에서 ‘물고기 서식 여부를 확인할 수 없다’고 판정을 받은 뒤 7년 만의 일이다.
온천천의 경우 시민단체 ‘온천천 살리기 네트워크’가 지방자치단체의 용역을 받아 자연형 하천 복원 마스터플랜을 직접 만들었다. 먼저 1999년 하류 구간 3.5㎞의 양쪽 콘크리트를 뜯어내 자연석으로 대체했고 생태공원 등을 조성했다.
올 하반기에는 남은 중상류 구간 10㎞도 점차 자연석으로 교체할 예정이다. 건천화 현상을 해소하기 위해 빗물과 하수를 분리하는 방안도 추진된다. 이를 위해 이 단체는 온천천이 흐르는 금정과 동래, 연제구 등과 함께 ‘민관협의회’를 구성해 활동 중이다.
수원천의 경우는 1996년 시민단체들의 끈질긴 요구로 2단계 복개구간 490m의 사업계획을 수원시가 철회하고 30% 공정을 끝낸 복개용 콘크리트 기둥을 철거했다. 이어 전체 16㎞ 구간 중 도심을 지나는 5㎞ 구간에 어로와 친수 공간을 만드는 등 자연형 하천으로 만들었다.
▽하천은 친구=일본 수환경교류회 야마미치 쇼조(山道省三) 사무국장은 3월 열리는 제3회 세계 물포럼에 맞춰 ‘어린이 물포럼’ 개최를 준비하느라 바쁘다. 일본은 물론 한국 등 세계 각 국 어린이 100명이 모여 물의 중요성을 토론하게 된다.
야마미치 사무국장은 “물은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아이들에게 강을 체험하도록 해 물의 중요성을 느끼도록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도쿄(東京)를 거쳐 흐르는 138㎞ 길이의 다마(多摩)천에는 학생들이 수질검사는 물론 지역의 역사와 문화 등을 배울 수 있는 강변학교 4곳이 있다. 이런 관심으로 다마천은 1970년대까지는 오염이 심했지만 지금은 40종이 넘는 물고기가 살 정도로 되살아났다.
국내에서도 지역 환경단체들이 주도하는 하천생태탐사나 생태기행이 점차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전주천의 어류군집생태조사와 남강(진주)의 생태환경탐사, 중심천(광주)의 생태탐사, 풍서천(천안)의 생태조사 등이 대표적이다. 환경정의시민연대 오성규(吳成圭) 정책실장은 “하천 살리기의 핵심은 강의 생태적 가치를 회복하는 것”이라며 “미래 세대인 어린이들에게 ‘강이 친구’라는 사실을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 진기자 leej@donga.com
민관 합동으로 자연형으로 복원되고 있는 주요 하천하천지역주요 사업 내용온천천부산 금정, 동래구 등물길을 구불구불하게 만들고 둔치 정비전주천전북 전주시여울과 소(沼)를 반복 설치하고 어도(魚道) 손질수원천경기 수원시복개계획 철회하고 30% 공정이 진행된 복개구간도 철거안양천경기 안양, 의왕시 등자연정화시설 설치와 둔치 주차장 철거 유도승기천인천 남동구둔치 농사 중단과 주민의 자발적 청소무심천충북 청주시하상구조물 일부 철거와 자전거전용도로 설치탄천경기 성남시 분당구빗물관과 하수관 직접 탐사해 문제점 파악 후 시정홍제천서울 서대문구자전거전용도로 설치와 하천정화 캠페인 지속 추진자료:환경정의시민연대
▼이끼낀 바닥자갈 칫솔로 청소▼
경남 김해시 상동면의 대포천(大浦川)은 4, 5급수를 맴돌던 수질을 지역 주민의 눈물겨운 노력으로 1급수로 탈바꿈시킨 하천으로 유명하다.
대포천의 변화는 1997년 정부가 부산 등 도시 지역에 맑은 물을 공급하기 위해 낙동강으로 흘러드는 대포천 인근을 상수원보호구역으로 지정하겠다고 나서면서부터 시작됐다.
대포천 유역 주민 4000여명은 보호구역으로 지정될 경우 생업인 축산업을 포기해야 하기 때문에 처음에는 ‘보호구역 결사반대’를 외치며 반대의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두 달 남짓한 투쟁에도 불구하고 성과가 없자 주민들은 ‘상수원반대투쟁위원회’를 ‘수질개선대책위원회’로 바꾼 뒤 대포천을 스스로의 힘으로 깨끗한 하천으로 만들기로 결정했다.
호주머니를 털어 유급 감시원을 고용해 공장폐수 무단방류를 차단하고 축산시설 폐수가 흘러 들어가지 않도록 배출시설을 설치하거나 수거차량을 통해 위탁 처리하도록 했다.
주부들은 설거지를 할 때도 휴지로 먼저 그릇을 닦았고 음식물쓰레기는 반드시 분리해 버렸다. 정기 청소 때는 이끼가 낀 바닥 자갈을 수세미나 칫솔로 일일이 닦아내는 수고도 아끼지 않았다. 하천 살리기 착수 1년 만인 1998년 3월 대포천 수질은 생물학적산소요구량(BOD) 0.3ppm으로 회복됐다. 조개와 물고기, 철새들도 찾아들었다. 정부는 주민들의 이런 노력에 감복해 2002년 4월 보호구역 지정을 유예하는 조치로 화답했다.이 진기자 leej@donga.com
▼하천 살리려면▼
하천은 ‘끊임없는 변화’가 본질이다. 그러나 인간이 하천에 지나치게 간섭한 결과 자연적인 변화가 제어되는 등 하천이 갖고 있던 본래의 특성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즉, 도시 하천들을 중심으로 수질이 매우 악화되었음은 물론 경관도 나빠져 결국 생태계에도 큰 위협이 되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점차 악화되는 하천 환경을 개선하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하천 살리기’는 크게 두 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먼저 기술적인 한계다. 물가에 거석을 쌓거나 둔치에 나무를 심는 등 몬순기후대인 우리나라 하천 특성과 거리가 있는 외국식 하천 복원 기법이 도입되고 있다. 이로 인해 또 다른 형태의 생태계 변화와 고비용 하천 정비에 대한 우려가 없지 않다.
둘째, 하천 살리기에 대한 가치 문제를 들 수 있다. 하천의 자연적인 변화를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가, 하천 살리기를 둘러싸고 자연의 모습과 인간의 가치관이 충돌할 때 어떻게 절충할 것인가, 인간 주도 하에 하천 본래의 모습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 등의 문제에 부닥치게 된다.
하천 살리기를 할 때는 환경이 양호한 하천인지, 악화된 하천인지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전자는 좋은 환경을 어떻게 보전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반면 후자는 하천 환경이 손상, 변질됐기 때문에 어떤 수준으로 복원할 것인지가 핵심이다. 또 복원 목표를 설정하는 데도 충분한 합의가 필요하다. 특히 예전으로 되돌아가는 것은 무리가 있으므로 과거 또는 현재 서식하는 생물들이 계속 살 수 있는 환경시스템을 복원해야 한다.
무엇보다 하천 살리기는 유역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영양염류와 오염물질의 제어, 유량 확보를 위한 유역의 저류 및 보수 기능의 유지, 적절한 토사 유출량 확보 등은 유역 수환경관리 및 치수관리 개념과 비슷한 것이므로 이들과 연계한 종합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결론적으로 하천의 자연성은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변화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될 때 지속 가능한 하천 살리기 사업이 가능할 것이다.
이삼희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선임연구원·
미국 유타주립대 객원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