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연천군은 지난 반세기 동안 냉전시대의 산물인 군사시설보호법에 묶여 지역발전이 가로막혀 왔다. 인구도 1984년 6만8000명에서 20년이 지난 지금은 5만600명으로 줄어들었다. 전국의 지자체로는 유일하게 군 면적의 99.8%가 군사시설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건축행위는 물론 축사를 신축할 때도 군의 동의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 연천군의 전체 면적(695㎢) 중 군사시설 보호구역이 694㎢에 이른다. 49만평의 탱크 사격장을 비롯해 16개의 포사격 훈련장(36만평), 부곡리 다락대 사격장(742만평)이 들어서 연중 훈련이 실시되고 있다. 이로 인해 도로 훼손과 가옥 균열, 소음, 도로 내 흙 반입 등으로 교통사고가 빈발하고 있으며 전차의 도심통과로 인해 많은 주민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
그런데도 국방부는 수자원공사에서 추진하고 있는 한탄강 댐 건설로 다락대 사격장 일부가 물에 잠기게 되자 그 대안으로 내산리 계곡 일대에 대단위 군 훈련장을 조성하려는 계획을 세워 지역주민들과 마찰을 빚고 있다.
정부는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00년 1월 접경지역지원법을 제정하기도 했으나 이 법은 군사시설보호법과 수도권정비계획법의 하위법으로 자리잡아 그 실효성에 의문을 낳고 있다. 가령 최근 연천군의 중장기 개발계획에 따른 12개 사업 중 산림자원센터, 고대산 도립공원, 임진강 촬영장, 동막리 휴양촌, 남북통일생태 교육기관 조성사업 등에 대해 국방부는 군 작전에 지장을 준다는 이유로 동의하지 않았다. 이 문제는 현재 군 의회와 주민들의 반발에 따라 재협의에 들어간 상태지만, 원활하게 해결될지는 미지수다. 이런 상황에서 ‘21세기 통일시대의 희망찬 새 연천 건설’은 한낱 구호로 끝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현실에 대한 군민들의 불만은 2002년 11월 22일 전곡역 앞에서 열렸던 범군민궐기대회를 기점으로 폭발하기 시작했다. 현재는 지역 사회단체들이 자발적인 모임을 구성해 지역현안대책위를 적극 지원하고 있다.
바야흐로 탈냉전시대라고 한다. 삶의 질이 가장 중요한 시대라고도 한다. 이제 정부와 국방부는 냉전시대의 군사작전 개념이 아닌, 화해시대에 걸맞은 주민 편리와 복리를 최우선에 두는 작전 개념을 도입해야 할 때가 아닌가.
이를 위해서는 그동안 각종 군사훈련으로 인한 지역 주민들의 물질적, 정신적 피해에 대한 ‘군사지역 특별지원법’(가칭)의 제정을 검토해야 한다. 군사분계선을 중심으로 남방 25㎞ 범위로 정해진 군사시설 보호구역도 15㎞ 이내로 조정될 수 있도록 적극적인 검토가 뒤따라야 한다. 3번 국도변을 따라 넓게 조성된 군 진지와 포사격장을 효율적으로 운영한다면 훈련장을 줄이는 게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특히 현가리 전차포 사격장은 연천읍과 지근 거리에 있어 주거환경을 해치는 만큼 반드시 외곽으로 이전해야 한다. 다락대 사격장 침수에 대비해 내산리에 대규모 훈련장을 조성하려는 국방부 계획도 철회돼야 한다.
무엇보다 지역발전을 가로막고 있는 수도권정비계획법이 현실과 동떨어져 있으므로 보상 차원에서 이를 철폐해 자연스럽게 인센티브를 적용하는 것도 하나의 대안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윤승 경기 연천지역사랑 실천연대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