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엘리베이터 업계 1위 업체인 미국 오티스사는 1999년 LG산전 엘리베이터 사업부문과 합작하면서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한국에만 있는 ‘디자인연구소’ 때문이었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도 엘리베이터를 디자인하지만 기성복을 찍어내듯 표준모델을 개발하는 수준이었다. 기본적으로 엘리베이터는 안전하면 됐다.
반면 한국은 독특했다. LG 현대 등 선도업체들이 구매자들의 입맛에 맞춘 ‘맞춤 디자인’으로 이미 엘리베이터 패션시대를 열어가고 있었다.
특히 LG는 디자인연구소를 찾은 고객이 취향에 따라 갖가지 디자인을 직접 시뮬레이션해 ‘나만의 엘리베이터’를 꾸밀 수 있도록 돕고 있었다.
‘디자인연구소’에 흥미를 느낀 오티스는 이 조직을 확대 발전시켰고 세계 시장에 엘리베이터 패션 바람을 일으켰다.
이후 힐튼호텔 등 외국 업체들은 새 건물을 지을 때마다 오티스에 ‘맞춤 디자인’을 요구했고 오티스 본사는 그때마다 한국 법인인 오티스LG 디자인연구소에 도움을 청했다.
최근에는 디자인 못지않게 엘리베이터의 지능지수까지 급격히 올라가고 있다. 지문인식, 장난운행 방지, 각종 정보제공 등 디지털 기술이 융합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엘리베이터도 패션시대=국내 엘리베이터 맞춤 디자인 시대를 이끌고 있는 대표적인 빌딩은 인천국제공항, 서울 도곡동 대림 아크로빌, 아셈타워, 코엑스, 흥국생명 빌딩 등이다.
인천국제공항은 알루미늄과 스테인리스, 유리를 주재료로 한 건물 이미지에 맞춰 엘리베이터도 유리와 스테인리스강을 이용한 누드형을 채택했다.
대림 아크로빌은 주상복합 빌딩인 점을 고려, 목재와 대리석 등 자연 소재를 적용해 편안하면서도 우아한 분위기를 연출했고 아셈타워는 빌딩 전체를 감싸고 있는 유리 소재와 금속 재질의 특성을 반영, 엘리베이터에 철과 대리석 소재를 조화시켜 현대적 감각을 살려냈다.
또 코엑스와 흥국생명 본사 엘리베이터는 고층 빌딩의 외관에 맞춰 목재와 가죽 질감 소재를 사용, 차분하면서도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유도했다.
오티스LG 디자인연구소 류현선 주임연구원은 “최근 들어 엘리베이터 차별화를 통해 빌딩의 독특한 개성을 살리려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며 “국내 맞춤 디자인 엘리베이터 시장 규모가 가까운 장래에 표준품 시장 규모에 육박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엘리베이터 패션 바람은 아파트로도 옮겨 불고 있다. 아파트 브랜드 전략에 따른 것으로 저가 표준품을 채택하던 과거와는 크게 달라진 현상이다.
대표적인 예가 지난해 인기몰이를 한 ‘대림 e편한 세상’과 ‘롯데 캐슬’. 대림은 편안함이라는 컨셉에 맞게 엘리베이터 내부 벽면을 차가운 스테인리스 재질 대신 나무 질감을 느낄 수 있도록 표면 처리했다. 롯데 캐슬은 짙은 체리목으로 표면을 처리, 중후하면서도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했다.
▽똑똑해지는 엘리베이터=현대엘리베이터는 응급환자 수송이 필요한 병원이나 보안기능이 필요한 인텔리전트 빌딩을 중심으로 지문인식 기능을 선보이고 있다.
지문인식 엘리베이터는 지문이 등록된 사람이 엘리베이터에 지문을 인식시키면 지정한 층으로 엘리베이터가 직행하는 시스템이다. 엘리베이터가 지정 층으로 도착하기까지는 내외부 호출버튼 기능이 일시 정지된다.
아파트에는 어린이들의 장난을 방지할 수 있는 기능이 도입되고 있다. 탑승객 무게에 비해 호출 개수가 현저히 많을 경우 모든 호출 정보를 취소시킨 뒤 다시 호출 버튼을 누르게 하는 시스템이다.
고급 건물에서는 ‘향기 나는 엘리베이터’가 인기를 끌고 있다. 엘리베이터 내부에 열적외선 감지센서를 부착, 승객이 있을 때만 자동으로 향기가 배출되고 송풍 팬을 통해 엘리베이터 내부에 향기가 퍼지도록 고안한 장치다.
오티스LG와 현대엘리베이터가 잇따라 도입한 ‘즐거운 엘리베이터’도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 엘리베이터 내외부에 설치한 LCD 화면을 통해 이용객에게 필요한 정보를 실시간으로 제공해 승객의 지루함을 던다는 개념이다.
인터넷 콘텐츠 업체와 계약을 해 주가정보, 날씨, 뉴스, 건물 소독일정, 반상회 등 텍스트 정보는 물론이고 동영상 광고, 건물 안팎 상가 및 음식점 광고 등을 끊임없이 바꿔 담을 수 있어 광고수익까지 기대할 수 있다.
배극인기자 bae215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