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피겨스케이팅 100년’을 써낸 나용미씨와 이상은-종은씨 자매(왼쪽부터)가 8일 열린 출판기념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강병기기자 arche@donga.com
경기단체나 체육 전문가도 손을 못댄 한국 피겨스케이팅 역사를 세 모녀가 자비를 들여 3년반만에 완성했다. 나용미씨(52)와 두 딸 이종은(27·이화여대 사회복지대학원)-상은(23·이화여대 경제학과)씨 자매가 그 주인공.
이들 세 모녀는 99년부터 빙상 원로들을 찾아 다니며 자료를 수집해 ‘한국의 피겨스케이팅 100년’(미래사)을 출간, 8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출판기념회를 가졌다.
모녀가 이 어려운 일을 시작한 것은 92년부터 3년간 피겨 국가대표 상비군을 지냈던 상은씨 때문. 99년 대학에 들어간 그는 우연히 피겨스케이팅 자료를 찾다가 놀랐다. 자료라고 할 만한 것이 거의 없었기 때문.
상은씨는 그해 여름 어머니, 언니와 함께 한국 피겨스케이팅사를 엮어내기로 뜻을 모았다. 학창시절 잠깐 스케이트를 탔던 어머니 나씨가 빙상원로들을 만나 취재했고 상은씨는 도서관에서 신문을 뒤지거나 미국에 거주하는 원로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자료를 수집했다. 종은씨는 자료의 분류를 맡았다.
상은씨는 “어머니가 원로들을 일일이 찾아다녔지만 처음엔 무시당하기 일쑤였다. 1년쯤 지났을 때 너무 힘들어 포기할까도 생각했지만 우리가 안하면 귀중한 피겨스케이팅 자료가 다 흩어질 것 같아 악착같이 매달렸다”고 말했다.
이들의 노력이 알려지면서 빙상 원로들이 앞다퉈 자료를 제공했다. 그 동안 모은 자료만 해도 방 하나를 다 채울 정도다.
그러나 다시 난관이 찾아왔다. 출판사들이 경제성이 없다는 이유로 출판을 꺼려한 것. 결국 세 모녀는 자비를 털어 책을 냈다.
‘한국의 피겨스케이팅 100년’을 통해 새로 밝혀진 내용은 적지않다. 피겨스케이팅이 한국에 처음 도입된 게 1894년이라는 사실도 그렇다. 또 그동안 공개되지 않은 사진들이 여러 장 실려있다. 책 말미엔 영어 발췌와 화보를 추가, 외국인도 볼 수 있게 했다.
이날 출판기념회에는 박성인 빙상연맹 회장 등 많은 빙상관계자들이 참석해 세 모녀의 노고에 박수를 보냈다. 이해정 연맹 고문(76)는 “너무 기쁜 날이다. 빙상의 역사를 새로 쓴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기뻐했다. 이치상 연맹 사무국장도 “우리도 자료를 수집하고 있었지만 쓸 엄두를 못냈었다. 참으로 장한 일을 해냈다”고 말했다.
양종구기자 yjong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