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과 향기를 파는 ‘개성상인’이 타계했다.
9일 오전 별세한 태평양그룹 서성환(徐成煥) 회장은 불모지였던 한국의 화장(化粧)문화를 개척한 선구자다.
1923년 황해도 평산군 적암면 신답리에서 태어난 고인은 1945년 광복 직후 개성에서 국내 첫 화장품회사인 태평양화학공업을 세우면서 화장품사업에 뛰어들었다. 당시엔 함경남도 원산시에서 원료를 사 와 제조 판매까지 모두 소화하던 일인다역(一人多役)이었다. 이를 바탕으로 태평양은 1970년대 한국 화장품시장의 70%를 차지할 정도로 발전을 거듭해 왔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개성에서 자라 ‘개성상인’의 자존심을 가진 서 회장은 입버릇처럼 “소비자를 속이지 말고 소비자에게 더 큰 이익을 주도록 하라”고 강조할 정도로 신뢰경영을 중시했다. 품질향상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여 1954년 국내 최초의 화장품연구실을 열었으며 인삼에서 사포닌 성분을 추출해 한국적 화장품을 만들기도 했다.
이와 함께 고인은 여성인력 활용에서 시대를 앞서갔다. 1958년 국내 최초의 사외보(社外報)인 ‘화장계’를 발간했고 60년대 주부 인력을 ‘아모레’ 방문판매사원으로 투입하면서 업계 특유의 전문판매제도를 일궜다.
그의 업적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한국에 차(茶) 문화를 확산시킨 것. 녹차를 즐기는 인구가 거의 없었던 70년대 중반 차사업을 시작, 30여년 동안 지속적으로 투자해 끽다(喫茶)를 생활 속에 뿌리내리게 했다.
그는 외부손님과의 식사 약속이 없으면 회사 구내식당에서 종업원들과 함께 식사하고 사내에서는 유니폼을 입을 정도 근검절약이 몸에 뱄다.
고인은 특히 끊임없는 학업에 대한 열정으로 창업 뒤인 61년 국학대 정치학과를 졸업한 데 이어 74년 고려대 경영대학원을 마쳤다.
고인은 66∼83년 대한화장품공업협회 회장을 맡은 것을 비롯해 70, 80년대에 상장사협의회장, 대한상공회의소 부회장, 대한농구협회 회장으로 활동했다. 또 경제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철탑산업훈장(71년), 은탑산업훈장(74년), 한국능률협회 한국의 경영자상(84년), 국민훈장 모란장(90년) 등을 받았다.
이헌진기자 mungchi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