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독서 모임에서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자는 제안이 있었다. 20년 만의 두 번째 독서는 이렇게 시작됐다. 그 사이 나는―조르바가 소설 속의 ‘나’, 곧 저자 카잔차키스 자신을 향해 비아냥대는 호칭인 ‘책벌레’까지는 아니지만―책 읽는 것 이외에는 할 줄 아는 게 별로 없는 ‘골방지기’가 되었다. 문자의 유폐된 공간 속에서 그 지식의 묘사가 마치 세상 자체인 듯 착각하는 허식(虛飾)에 사로잡혀 버렸다. 그러니 이제는 ‘살아 있는 야성의 영혼을 가진’ 사람 조르바는 소설 속의 ‘나’와 손쉽게 동일시된 내게도 존재를 흔드는 격랑이었다.
무의식에서까지 근대성의 틀에 갇힌 나는, 근대 최고 발명품 중 하나인 ‘자유의 의미’를 늘 되새기며 살아간다(카잔차키스가 이 책에서 이 용어를 얼마나 많이 사용하는지…). 그러나 자유를 염원하는 나는 자유를 누릴 ‘자격’을 얻고자 번번이 나의 자유를 유보한다. 이루려 하는 목적을 향해 쉬지 않고 달리는 자에게 자유는 아직 바람의 대상일 뿐이다. 아직도 먼 길을 달려야 하며 근면하게 절제를 연습해야 한다. 아니 실은 나의 의지를 흔드는 유혹에 번번이 넘어간다. 문명의 즐거움을 만끽하지 못하면서도 매순간 향락에 몸을 내어준다. 그러니 자유는 여전히 먼 곳에 있고, 여전히 열망의 대상이다.
조르바가 소설의 ‘나’를 향해 책 따위는 불태워 버리라고 말할 때, 나는 카잔차키스가 된 듯 말문이 막혔다. 그것은 그 속의 문자가, 그 속에 담긴 근대성의 기호들이 알게 모르게 우상이 돼 버린 탓이다. 카잔차키스에 따르면, 자유를 향한 일생의 투쟁에서 최후단계인 세 번째 차원은 ‘모든 우상에 대한 투쟁’이다.
터키의 식민지였던 크레타섬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식민지로부터의 자유를 열망하며 자랐다. 그러나 그 투쟁의 결과인 독립이 곧 자유를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사실 또한 그의 체험의 일부가 되었다. 지배 집단의 우익 테러리즘과 저항 집단의 좌익 테러리즘은 그와 그의 이웃들이 당면한 괴로운 현실이었다. 소련 사회주의의 혁명 속에 함축된 폭력성과, 자본주의의 최첨단 영국의 산업화에 내포된 파괴성은 인간 문명에 덧씌운 저주의 덫이었다. 그래서 카잔차키스에게 자유의 투쟁은 ‘내면의 식민지’로부터의 독립을 포함한다. 식민지 백성의 영혼 속에 새겨진 제국주의 터키를 극복해야 하고, 나아가 제국주의라는 근대적 기호가 상징하는 문명, 그 근대적 우상을 넘어서는 것.
그런데 그는 조르바에게서 그런 자유의 생명력을 보았다. 계획에 매이지 않고, 성공에 집착하지도 않으며, 계속된 실패에도 좌절하지 않는 질긴 생명력의 존재. 카잔차키스가 문자의 세계 속에서 허우적댈 때, 그가 만난 조르바는 온 세상을 떠돌며 언어의 막힘을 악기와 춤으로 넘어서는 존재였다. 그들이 함께 기획한 사업이 실패로 귀결됐을 때, 조르바는 춤을 추었고 카잔차키스는 조르바의 기억을 문자로 재현했다. 비로소 문자의 감옥에 옥죄이지 않으면서 문자를 다루는 자유를 얻은 것이다.
어쭙잖은 글쟁이인 내게 카잔차키스의 글이 새삼스러운 감동을 준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한데 마지막으로 나는 이 책에 대해 한 가지 유감을 품는다. 수도자의 편집증적 성적 공포심 탓인가, 여자에 대한 적개심이 그의 깨달음을 가로지르고 있다. 얼마전 한 일본 작가의 사진전을 보면서, 가학적 포르노를 재현한 듯한 수많은 사진에 어지럼증을 일으켰던 기억을 되새겨본다. 하나의 깨달음을 위해 다른 것을 대상화하고 그에 대한 가학성을 자제하지 못하는 편집증적 기억을 나는 보아야 했다. 실은 나는 이 책에서도 그러한 기억을 지우고서야 저자와 대화할 수 있었다.
김 진 호 목사·당대비평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