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문화칼럼]이승우/수백년 된 파리의 건물들

입력 | 2003-01-10 18:07:00


대산재단의 후원을 받아 번역된 내 소설의 출간에 맞춰 파리에 간 적이 있다. 2년 전의 일이다. 빡빡한 일정의 틈을 이용해 파리의 이곳저곳을 기웃거리고 다녔다. 유럽 여행이 처음이었으니 소설과 영화들을 통해 웬만큼 익숙해졌다고 해도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기대가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의 시선을 맨 먼저 사로잡은 것은 오래된 길과 건물들이 만들어내는 도시의 풍경이었다. 지어진 지 200∼300년은 족히 되었을 건물들 속에서 파리 사람들은 자고 먹고 일하고 있었다. 20세기에 지어진 건물은, 적어도 파리 중심부에서는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오래된 건물들 사이로 뚫린, 마찬가지로 오래된, 아마도 처음에는 마차가 다녔을, 좁은 길을 따라 덩치가 작은 차들이 달렸다. 그런 풍경들은 그곳에서 본 무엇보다도 인상적이었다.

▼과거에 대한 존경심 대단▼

어떻게 왕조 시대의 건물이 아직 건재할 수 있을까. 그런 의문이 든 것은 몇 백년은커녕 지은 지 30년 된 건물도 찾아보기 힘든 나라의 국민인 나로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10년만 넘으면 재건축을 생각하고, 헐고 부수고 새로 짓는 것을 능사로 아는 우리가 아닌가. 새로 지은 아파트에 입주하면서 한 번도 쓰지 않은 싱크대를 뜯어내고 풀도 채 마르지 않은 벽지와 장판을 걷어내는 일을 다른 나라 사람들도 하는지 궁금하다. 그러니 오래된 건물의 외양은 그대로 유지한 채 내부를 고쳐가며 산다는 그들의 생활 방식이 낯설 수밖에. 내 눈에는 파리 사람들이 유적 속에서 자고 먹고 유적 사이를 걸어다니는 것처럼 보였다.

이상한 것은 또 있었다. 내 책을 낸 출판사를 실질적으로 운영해 가는 사람은 둘이었는데 사장과 편집책임자라는 직함을 가지고 있는 그들은 얼마 전까지 한 집에 사는 부부였다고 했다. 이제 헤어져서 각기 다른 파트너를 만나 지내면서도 사업 동료로서 아무 거리낌없이 일을 해 나갔다.

사귀다가 헤어지면 원수가 되고 다시는 얼굴을 보지 않으려고 하는 우리의 인간 관계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그거야 관습과 전통이 다르니까 그럴 수도 있는 일이긴 했다. 그렇긴 해도 인간 관계에서의 그런 유연함이 내부는 수리하고 고치면서도 외양은 바꾸지 않는 그들의 건축물에 대한 태도와 무관하지 않다는 인상은 피하기 어려웠다.

부부로서는 헤어지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간관계를 완전히 단절해 버리지는 않는다는 것은 뭘까. 일부를 잃었다고 전부를 포기하지 않는 그 신중함 속에서 내가 더 많이 느낀 것은 타인에 대한 배려가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한 존경심이었다. 요컨대 과거 시간 속의 누군가와의 만남을 부정하는 것은 곧 그 사람과 함께 보냈던 과거의 시간을 부정하는 일이고, 그 시간 속의 자신을 부정하는 것이며 그것은 곧 자기 자신을 부정하는 일이 되지 않겠는가. 왜냐하면 나는 과거 시간 속의 나를 포함해서 나이기 때문이다. 선은 점들의 연속이고 시간은 끊어지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우리는 우리 과거를 너무 잘 부정하고 자기 자신을 존경하는 데 서툰 사람들인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일부를 잃으면 쉽게 전부를 포기한다. 하나가 마음에 안 들면 전부를 부수고 새로 시작한다. 꿰매고 고치는 것보다 헐고 다시 만드는 쪽이 낫다고 생각한다. 그것을 진보인 줄 알고 발전인 줄 아는 것 같기도 하다.

▼우리는 과거를 너무 부정▼

따지고 보면 사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된 원인이 우리에게 부정해야 할 시간이 많았기 때문이라는 건 모두 인지하고 있는 사실이다. 그렇다 해도 새로운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직전의 정권을 부정하고, 헐고 부수고 새로 세워야 하는 이 땅의 정치 이력은 민망하기 짝이 없다. 그런 과정 속에서 국민 모두 자기도 모르게 부정과 단절의 습관이 몸에 밴 것이나 아닌지.

나는 지어진 지 100년 넘은 건물들 속에서 일하고 먹고 자고, 100년이 넘은 도로를 활보하는 꿈을 꾼다.

이승우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