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니지'로 유명한 NC소프트의 게임기획자 채윤호 과장(34)이 팔장을 낀 채 미소짓고 있다. -박중현기자
“영화에 감독이 있다면 게임에는 게임 기획자가 있습니다.”
온라인 롤플레잉게임인 ‘리니지’로 유명한 엔씨소프트의 채윤호(蔡允浩·34)과장. 지난해 11월 상용화된 리니지의 자매게임 ‘리니지 토너먼트’의 기획자다.
리니지 토너먼트는 캐릭터끼리 상대방을 죽여 청소년들에게 악영향을 준다해서 문제가 됐던 ‘플레이어 킬링’을 양지로 끌어올린 게임. 캐릭터들이 온라인에서 다양한 게임방식을 통해 1대1, 다수 대 다수로 다양한 경기를 할 수 있게 했다.
“미국에서는 게임 기획자를 ‘게임 디렉터’라고 표현합니다. 영화감독처럼 게임의 전 부문을 총괄하는 사람이죠. 한마디로 프로그램과 그래픽 작업만 빼고 게임 개발과 관련한 모든 일을 한다고 보면 됩니다.”
채 과장은 호서대 전자계산학과를 졸업하고 1997년 연세대 대학원에 개설된 국어정보학과 대학원 석사과정을 밟다가 1998년 엔씨소프트에 입사했다. 대학시절 정보기술(IT)업체에서 윈도 응용프로그램 프로그래머로 일한 경력이 있다.
“엔씨소프트에 와서 처음에는 배경그래픽 작업, 배경음악 작업 등을 맡았습니다. 기획자가 꼭 프로그래머나 그래픽 디자이너일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영화감독이 조명, 음악을 잘 알면 좋은 영화를 찍을 수 있듯이 기술을 많이 알면 기획자로서 대단히 유리합니다.”
게임의 크기나 ‘장르’에 따라 게임 기획자가 하는 일도 상당히 달라진다. 리니지처럼 게임 안에 하나의 ‘사회’를 구성해야 하는 온라인 롤플레잉 게임에서 기획자는 그 사회의 세계관부터 사회의 구성요소, 플레이어와 적대세력의 캐릭터 설정 등 모든 부분을 ‘창조’해야 한다. 또 문서작업부터 허드렛일까지 기획자의 업무는 끝이 없다.
“게임 기획자에게 가장 필요한 소양은 균형감각과 논리적 사고입니다. 스타크래프트 같은 전략시뮬레이션이나 롤플레잉 게임에서 캐릭터 간의 균형이 깨지는 순간 게임은 위기를 맞습니다. 또 게임 유저들의 마음을 읽어낼 수 있는 통찰력과 마케팅 능력도 중요합니다.”
게임 장르에 따라 기초작업부터 상용화까지 스타크래프트같은 전략시뮬레이션 게임은 1,2년, 온라인 롤플레잉게임은 2∼5년이 걸린다.
게임을 개발하는 동안 게임 기획자에게 출근, 퇴근의 개념은 무의미해진다. 적게는 10여명, 많게는 50여명 가까운 인력과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면서 침식은 회사에서 해결하는 일이 많다. “이렇게 살다보니 아직까지 결혼은 꿈도 못 꿨다”고 채 과장은 털어놓는다.
한국의 게임업계에서 채 과장은 연장자에 속한다. 게임기획자들 대부분은 20대 초반부터 30대 초반. 하지만 채 과장은 “게임 기획자는 게임 개발의 다른 업무를 맡은 사람보다 훨씬 깊은 ‘내공’이 필요합니다. 미국의 대형 게임개발업체에서는 40, 50대 기획자도 많습니다”라고 말한다.
수입은 능력과 업체의 규모에 따라 천차만별. 1000만원대부터 1억원 이상까지 스펙트럼이 크다. 누적 사용자수 1000만명이 넘는 세계 1위의 온라인 게임업체 엔씨소프트의 게임 기획자라면 업계 최고수준에 속한다.
채 과장은 게임 기획자를 지망하는 후배들에게 이렇게 조언한다. “서두르지 말고 게임개발 분야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아가야 합니다. 의욕만 넘치는 젊은 감독이 만든 영화가 허술해 보이듯 짜임새 있는 대작을 만들기는 쉽지 않습니다. 리니지 같은 ‘걸작’은 쉽게 나오지 않는 법이거든요.”박중현기자 sanjuc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