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양평군의 이보경 주부가 10세, 6세의 두 아들에게 천연원료가 담긴 세탁볼(Ball)과 폐식용유로 만든 세탁비누 등을 앞에 놓고 물을 사랑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양평=이훈구기자
《일본 시가(滋賀)현 환경생활협동조합은 폐식용유를 재처리해 트랙터 등 농기계 연료로 사용하고 있다. 폐식용유를 비누로 만드는 것만으로는 부족하자 1992년 조합원들이 ‘연료화’ 아이디어를 냈다. 시가현공업기술센터 등의 지원으로 1996년 연료 상용화에 성공했다. “1977년 비와코(琵琶湖)에 대규모 적조현상이 발생하자 합성세제를 쓰지 말자는 주부들의 움직임이 처음 일었어요. 1983년 또 적조가 발생하자 행정당국에 맡기지만 말고 자발적으로 오염을 줄이자는 운동이 본격적으로 일어났지요.”》
시가현 환경생협 후지이 아야코(藤井絢子) 이사장의 설명이다. 후지이 이사장은 “폐식용유로 비누를 만든 게 1990년 조합 설립으로 이어졌고 나아가 농기계 연료 제작, 우유팩으로 만든 휴지 만들기 등 150여개의 천연제품 제조로 확대됐다”고 덧붙였다.
비와코는 일본 중심부에 위치한 세계에서 손꼽히는 오래된 호수의 하나로 독특한 고유 어종들이 살고 있는 생태적 요충지. 인근 교토(京都)부와 오사카(大阪)부, 효고(兵庫)현 주민 1400만여명에게 먹을 물도 제공하기 때문에 오염 방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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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이 이사장은 “현재 3800여명인 회원을 중심으로 물에 부담을 덜 주는 천연제품 구입을 확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생활하수가 오염 주범=국내에서는 하루 2300여만t의 오폐수가 발생한다. 이 중 각 가정에서 나오는 생활하수가 1600여만t으로 가장 많다. 생활하수는 전체 수질오염 원인의 70%를 차지하는 ‘물의 파괴자’인 셈이다.
전국에서 하루에 나오는 음식물 쓰레기는 1만1000여t에 이른다. 해마다 줄어들고 있는 추세지만 감소량은 크지 않다. 이 중 6000여t인 57% 정도가 사료나 퇴비 등으로 재활용되고 나머지는 매립되거나 하수에 섞여나간다.
합성세제와 샴푸 등에 있는 화학성분과 음식물 쓰레기에 포함된 질소와 인이 생활하수를 오염시키고 있다. 세제는 거품막을 만들어 공기 중의 산소가 물 속으로 녹아들지 못하게 한다. 질소와 인은 조류(藻類)를 번식시켜 결국 물을 썩게 만든다.
경기 양평에 사는 이보경(李寶敬) 주부는 “석 달에 한번씩 이웃과 폐식용유로 비누를 만들어 쓰고 음식물 쓰레기는 꼭 모아 버린다”고 말했다. 생활하수 오염을 막기 위한 이런 자발적 움직임은 환경의식이 높은 ‘신세대 주부’를 중심으로 점차 전국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일본 국립환경연구소 이나모리 유헤이(稻森悠平) 수석연구원은 “도쿄(東京)만 해도 오염물질량의 68%가 생활하수”라며 “지나치게 쓰지도, 버리지도, 흘리지도 말자는 ‘부엌대책’을 마련해 주부 교육을 강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수관 정비에도 나서야=시가현 후지이 이사장은 1986년 가정마다 생활하수와 분뇨를 함께 정화하는 합병정화조 설치에 앞장섰다. 합병정화조를 거치면 생물학적산소요구량(BOD)이 200∼300ppm이나 되는 하수가 1∼2ppm으로 낮아진다.
후지이 이사장은 정화돼 나온 물을 화장실이나 정원, 세차 등에 재사용하도록 제안하기도 했다. 시가현의 힘만으로는 하수처리율이 70%에도 못 미치는 비와코를 보존하기 어렵다는 점을 감안한 것이다.
국내에서도 하수관을 건설하기 힘든 지역에서 2002년부터 짓는 신축 건물은 예외 없이 일본의 합병정화조 같은 오수처리시설을 짓도록 했다. 하지만 하수처리시설이 있다고 해서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수관이 훼손된 곳이 많아 하수가 새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2000년 현재 국내 172개 하수처리장에 유입되는 하수의 평균 수질은 BOD 102ppm이다. 이들 하수처리장이 처리할 수 있는 기준 수질(BOD 143ppm)의 71% 수준밖에 안 되는 비교적 깨끗한 물이 들어오는 셈이다. 이것은 하수관의 구멍으로 깨끗한 지하수나 강물이 들어오고 하수는 빠져나간 결과이다.
자발적 물 절약이 민간의 몫이라면 하수관 정비는 정부의 의무이다. 환경부는 2005년까지 1조1755억원을 들여 팔당호 주변 9개 시·군에 있는 하수관 1831㎞ 중 17%인 317㎞를 정비할 계획이다.
환경부 남궁은(南宮垠) 상하수도국장은 “지금까지 정부의 하수도정책이 하수관을 더 많이, 더 길게 설치하자는 것이었다면 앞으로는 하수관이 제 기능을 하게 수리하고 보완하는 데 초점을 둘 계획”이라고 말했다.
교토·쓰쿠바(일본)·경기 양평=이 진기자 leej@donga.com
▼공장폐수 '제로지대'▼
공장에서 사용하고 난 폐수를 모두 재활용한다면 물에 상처를 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물 사용량도 크게 줄일 수 있다. 방류수를 공장 외부로 내보내지 않고 재활용하는 것을 ‘무방류 시스템’이라고 부른다. 현재 국내에는 현대자동차 아산공장이 유일하게 무방류 시스템을 채택하고 있다. 현대차 아산공장은 자동차를 만드는 데 하루 1600t의 물을 쓴다. 그렇지만 공장 밖으로 배출되는 물은 비가 올 때 흘러나가는 빗물밖에 없다.
말이 그렇지 한 방울의 물도 밖으로 내보내지 않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현대차 아산공장에 있는 최첨단 정수시설은 이것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현대차는 1996년 4월 아산공장을 준공할 때 정수시설도 함께 만들었다. 이 시설은 공장폐수를 처리와 저장, 정수의 3단계를 거쳐 깨끗한 물로 재탄생시키고 있다.
먼저 생물학적산소요구량(BOD)이 평균 200ppm가량 되는 폐수에서 페인트나 기름 등의 오염물질을 응집, 침전시켜 없앤다. 이렇게만 해도 BOD가 10ppm 정도로 낮아져 산업폐수 방류수 기준(BOD 30ppm)을 충족시킨다. 이어 대형 탱크에 물을 저장한 뒤 역삼투압 방식으로 정수해 생산라인에 재공급한다. 이 물의 BOD는 0ppm으로 그냥 마셔도 될 만큼 깨끗하다.
현대차 아산공장은 이 정수시설을 짓는 데 건설비만 57억원을 투자했다. 운영비는 한 달에 1억원이 넘는다.
아산공장이 엄청난 비용 부담을 무릅쓰고 이 같은 시스템을 채택한 까닭은 아무리 방류기준 이하의 폐수라도 일단 밖으로 나갈 경우 인근 삽교호의 수질을 오염시키고 그로 인해 어장에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주민 피해 보상 등에 돈을 쓸 바에야 아예 물을 한 방울도 밖으로 흘려보내지 않기로 결정한 것.이 시스템 덕에 이 공장은 2000년 ‘환경경영 대상’을 수상했다.이 진기자 leej@donga.com
▼전문가 기고▼
그동안 정부는 수질보전을 위해 하수처리장을 계속 확충하고 토지 이용을 규제해 왔다. 그러나 그 결과 규제대상에서 제외되는 배출시설이 늘어나고 배출허용기준 미만의 배출원이 증가하는 부작용을 낳았다. 더욱이 상수원 주변에 전원주택과 러브호텔이 난립하는 등 무계획적 토지 이용에 따라 수질이 개선되기는커녕 규제지역에는 각종 중복규제에 따른 피해의식이 만연하고 상하류간 갈등과 마찰만 심화돼 왔다.
이에 따라 정부는 유역의 오염물질 배출량을 총체적으로 관리하는 오염총량관리제도를 새로 도입해 시행을 앞두고 있다. 이는 총오염 부하량을 감소시키면서 지방자치단체의 개발욕구를 자율적으로 조절하자는 것이다. 즉 각 지자체에 허용 가능한 오염배출량을 할당, 수질오염에 대한 지역간 책임소재를 분명히 하고 수자원 이용과 지역발전에 대한 유역 전체의 형평과 상생(相生)을 꾀하기 위한 것이다.
오염총량관리제가 성공하려면 자기 지역 용수에 대한 절대적 권리만을 주장해서는 안 된다. 유역 내 전체 수자원을 후손에게 대물림할 공유자원으로 간주해 합의를 통해 지속 가능한 범위에서 공평하게 이용하는 공동체 인식이 바탕을 이뤄야 한다.
또 오염총량관리의 목표 역시 생태계 보전에 기반을 두고 다원화돼야 한다. 사막에서 물을 만난 사람도 그 물에 생물이 살지 않는다면 물을 마시지 않는다 한다. 수중 생태계의 건전성은 물 이용의 안전성을 보장하는 것인 만큼 유역 관리의 궁극적인 목적은 생태계를 효과적으로 보호·복원하는 데 있다고 하겠다.
국내에서 처음 시행하는 오염총량관리는 어떠한 환경정책보다도 과학적 기초 위에서 추진해야 한다. 오염총량관리제도를 통해 유역관리 연구 결과가 도출되면 그 결과를 토대로 정책이 추진되는 피드백 시스템이 구축되어야 할 것이다.
오염총량관리제의 성패는 개발과 보전의 균형을 위한 지자체의 주체적인 의지, 지자체와 중앙정부의 협조 및 지자체 간의 상생과 상호 공영을 위한 노력 여부에 있다. 만일 모든 지역이 오염물질의 삭감보다 개발만을 추구한다면 오염총량관리제는 ‘관리’가 아니라 또 하나의 ‘규제’가 되고 말 것이다.
공 동 수(국립환경연구원 수질오염총량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