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가수 조용필씨의 부인 안진현씨가 한창 나이인 54세에 심장질환으로 별세했다. 비단 안씨뿐 아니라 최근 뉴스에서 사회적 지명도가 높은 인사들이 심장질환에 의해 사망했다는 소식을 자주 접하게 된다. 심장내과 의사들은 이런 소식에서 찬바람을 실감한다. 순환기 질환은 추운 날씨와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굳이 통계까지 들먹이지 않더라도 순환기 질병의 발생 빈도는 겨울철에 압도적으로 높다. 또한 기존 심장질환자들도 겨울에 증상이 악화된다. 학문적으로는 여러 원인이 거론되지만 특히 추위에 따른 생리적 스트레스로 인한 교감신경계의 흥분, 신체 활동력 위축 등이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심장은 펌프 작용을 통해 신체의 여러 장기 활동에 필요한 산소와 에너지를 혈액을 통해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므로 심장은 뇌와 더불어 생명활동에 가장 중요한 장기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과거에는 선천성 심장질환이나 류머티즘성 질환이 심장질환의 주요 원인이었지만 최근에는 급성 심근경색증이나 협심증 심부전 등 후천적으로 혈관이 막힘으로써 발생하는 심장질환(허혈성 심장질환)이 급격히 늘고 있다. 70년대에 비해 90년대 후반에는 동맥경화로 인한 관상동맥 질환자수가 10배로 늘었으며 80년대 초반과 비교해도 7배 이상 증가했다. 필자가 근무하는 병원의 경우에도 경피적 관상동맥 중재술(외과수술 대신 혈관에 유연한 튜브를 삽입해 혈관을 넓혀주는 수술)과 관상동맥 우회술(환자의 신체 다른 부위에서 혈관 일부를 떼어내 막힌 관상동맥 혈관 부위에 잇는 수술)의 시술이 매년 20% 정도씩 급증하고 있고 이는 주로 겨울철에 집중된다.
따라서 관상동맥 질환을 줄이기 위한 노력은 특히 겨울철에 해야 한다. 신년 초에 대대적으로 금연 캠페인이 전개되는 것은 국민 건강을 위해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흡연이 심장병의 주요 요인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겨울철은 신체활동이 위축되기 쉬운 계절이므로 유산소운동을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 운동은 몸 전체의 순환은 물론이고, 심리적으로도 활기를 얻는 데 도움이 된다. 다만 가급적이면 기온이 높은 낮에 운동을 하는 것이 안전하다. 또 추위를 이긴다고 지나치게 기름진 음식물을 섭취하거나 과식하는 것도 금물이다.
연말이 지나 한풀 꺾이기는 했으나 지나친 음주도 문제다. 특히 관상동맥이 경련과 수축을 일으켜 혈류장애를 일으키는 이형 협심증의 경우 서양인에 비해 유달리 한국인에게 많이 나타나는데 이런 환자의 경우 소량의 알코올 섭취도 관동맥 연축(攣縮·순간적 자극으로 근육이 오그라들었다가 이완되는 현상)을 유발하므로 술은 절대 마시지 말아야 한다. 한두 잔의 포도주가 심장에 이롭다는 속설도 학문적 예외가 있는 것이다.
6·25전쟁에 참전해 전사한 20대 미군 병사들을 부검한 결과에 따르면 관상동맥 동맥경화는 이미 20대 초반 이전에 시작된다고 한다. 이처럼 오랜 시간에 걸쳐 진행되는 관상동맥 질환을 막기 위한 노력도 인생 초반부터 꾸준히 이어져야 한다. 젊은이들이 건강 유지를 위해 매일 겨울 산행을 하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노력의 극히 일부만 본받아도 한국의 건강 미래는 더욱 밝아질 것이다.
홍석근 부천세종병원 심장내과 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