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은행 투자신탁 보험 등 금융회사들끼리 자산획득전쟁(Asset Gathering War)이 치열하다.
370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는 단기 부동(浮動)자금을 얼마나 끌어들이느냐에 따라 죽느냐 사느냐가 결정되기 때문.
증권업계 1, 2위를 다투는 삼성증권과 LG투자증권이 먼저 ‘자산관리영업’이란 화두를 던지며 선전포고를 했다. 1위 은행인 국민은행도 올해 수익증권을 10조원 이상 팔겠다며 전의를 불태우고 있다. 굿모닝신한증권과 우리증권은 계열 은행을 통해, 한화증권은 기업인수합병(M&A)으로 참전할 뜻을 밝혔다.
증권사들이 자산획득전쟁을 벌이는 것은 증시침체가 장기화되고 수수료율이 계속 떨어져 ‘약정영업’으로는 더 이상 살아남을 수 없는 현실 때문. 여기에 저금리도 은행과 투신사를 싸움터로 몰아넣었다.
▽치열해지는 자산획득전쟁〓삼성증권 황영기 사장은 지난해 12월 “새해에는 약정위주 영업을 수익위주 영업으로 바꾸겠다”고 밝혔다. 본격적으로 자산획득전쟁을 시작하겠다는 선전포고를 한 셈. 약정에 얽매여서는 업계 1위로서의 차별성을 유지하기 힘들며 은행과 보험 등 다른 금융기관에서 거세게 불고 있는 자산 뺏기 경쟁에서 이기기 어렵다는 현실에 따른 것이다.
김정태 국민은행장은 신년사에서 “올해 수익증권 판매를 10조원 늘리겠다”고 맞불을 놓았다. 1000여개에 이르는 지점들이 100억원씩만 팔면 10조원은 무난하게 달성할 수 있을 것이란 분석이 많아 증권계가 크게 위협을 느끼고 있다.
이어 LG투자증권 서경석 사장은 “8개 점포를 중심으로 자산관리영업을 시험적으로 운용해보고 6개월 뒤부터는 확산시키겠다”고 맞받아쳤다.
굿모닝신한증권 도기권 사장도 “수익증권 판매를 위한 거점점포를 8개에서 15∼20개로 늘리고 신한은행을 적극 활용하겠다”고 응수했다.
한화증권 안창희 사장은 9일 취임 일성(一聲)으로 “수익증권을 잘 파는 증권회사와 합병하겠다”고 밝혀 자산획득전쟁에서 뒤질 수 없다는 의지를 다졌다.
‘일임형 랩어카운트’가 허용되는 3월부터는 전쟁이 더욱 뜨거워진다.
‘일임형 랩어카운트’는 고객이 일정 수수료를 내면 증권회사가 주식 채권 파생상품 등에 자유롭게 투자해 돈을 불려주는 상품. 따라서 3월부터는 수익률 경쟁이 본격화되고, 수익률에 따라 뭉칫돈이 이동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수익원 다양화가 과제〓증권사의 수입 중 위탁수수료가 차지하는 비중은 미국 메릴린치증권이 24.2%, 일본 노무라증권은 29.0% 정도. 이에 비해 삼성증권은 50.0%에 이른다. 한국의 다른 증권사는 70% 안팎.
반면 수익증권 판매 및 자산관리 수수료는 삼성증권이 22.9%인 반면 메릴린치는 44.4%, 노무라는 44.2%에 이른다.
삼성증권은 약정영업에서 수익영업으로 바뀌면 주식중개수수료 수입이 연간 적게는 100억∼200억원, 많게는 500억∼600억원 감소할 것으로 추정한다. 아직 위탁수수료 비중이 높은 만큼 그것을 보충할 수 있는 수익원을 찾는 것이 시급하다는 얘기다.
황 사장은 “파생상품 투자로 1000억원 이상을 벌고 수익증권 판매와 M&A 및 기업공개(IPO) 같은 투자은행(IB)업무에서 수익을 내면 전체 수익은 늘어날 것”이라고 자신한다. “앞으로 위탁수수료 비중은 30% 선으로 떨어뜨리는 반면 자산관리영업이 30%, IB가 20%, 캐피털마켓이 20%가 되도록 수입원을 다양화한다”는 것.
서 사장은 “LG종합금융과 합병해 다른 증권사에서는 할 수 없는 어음관리계좌(CMA)와 기업어음(CP) 업무를 적극 활용하고 작년 11월에 국내에선 처음으로 100억원어치를 판매한 장외 파생상품을 늘려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증권업계 구조조정 물살이 빨라진다〓현재 영업 중인 국내 증권회사는 44개. 외환위기가 일어난 97년 말 36개보다 8개나 늘어났다. 외환위기 이후 은행 투신 보험 종금 신용금고 등은 상당수가 문을 닫고 구조조정이 이뤄진 것과 대조적이다.
위탁수수료를 받아 경영하는 증권업 특성상 인위적인 통폐합이 쉽지 않았던 탓이 컸다.
하지만 올해부터는 시장에 의한 자율적인 통폐합이 일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투신증권·운용과 현대·대우증권의 매각이 매듭지어지고, 한국·대한투자신탁증권도 처리가 불가피하다. 대형사의 정리가 마무리되면 중소형사의 M&A가 이루어질 전망. 한화증권과 메리츠증권이 이미 M&A 뜻을 밝혔고 건설증권은 자진 폐업을 검토하고 있다.
자산획득전쟁으로 증권회사간 서열이 명확해지는 것은 자율적인 구조조정을 더욱 앞당길 것이 확실하다.
홍찬선기자 hc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