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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프리즘]최재천/'햇볕' 대신 '녹색정책'을

입력 | 2003-01-14 18:12:00


북한의 핵 사태가 날이 갈수록 점점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다. 이대로 가다간 북한이 자칫 이라크의 전철을 밟을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측도 나오고 있다. 사태의 심각성을 모를 리 없는 북한이 이처럼 또다시 벼랑 끝 외교를 택했다는 사실은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에 근본적인 한계가 있음을 나타낸다.

햇볕정책은 애당초 그 의도는 가상하나 결과는 기대하기 어려운 논리적 모순을 안고 있었다. 햇볕정책의 햇볕 개념은 바람의 신(神)과 태양의 신이 이른바 옷 벗기기 내기를 하는 얘기에서 온 것으로 안다. 바람의 신이 아무리 거센 바람을 일으켜도 행인은 점점 더 단단히 옷깃을 여미지만 태양의 신이 내리쬐는 따스한 햇볕에는 끝내 옷을 벗고 만다는 이 친숙한 이야기에 5년 전 우리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北이 원한 태양은 南아닌 美▼

북한으로 하여금 스스로 폐쇄의 옷을 벗어 던지고 통일의 길로 나오도록 만들려면 바람신보다 태양신의 힘을 빌려야 한다는 판단은 옳았다. 그러나 우리 자신이 결코 신이 될 수 없다는 데에 모순의 아픔이 있다. 북한이 우러러보는 신은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미국이다. 신이 아닌 우리나 일본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으려 한다.

하지만 북한이 그렇게도 조아린 신은 그리 너그러운 신이 아니었다. 1994년 북-미 제네바합의에 따르면 신은 그들에게 2003년까지 경수로를 지어주고 매년 50만t의 중유를 내려주기로 약속했다. 그래서 북한은 원자로 시설을 제물로 바쳤다. 그러나 그로부터 9년이 흐른 오늘 북한에는 아직도 경수로가 없다.

햇볕정책이 남북간 화해의 분위기를 이끌어내는 데에는 기여했을지 모르나 북한은 단 한순간도 우리를 태양의 신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설령 북한이 우리를 신으로 생각한들 우리에게는 그럴 만한 능력이 없다. 그들의 옷을 벗길 만큼 찌는 듯한 햇볕을 내려줄 수 있는 자원이 없다. 따지고 보면 우리도 처음부터 미국을 신으로 기대하고 시작한 정책이 아니었던가. 애당초 우리의 햇볕정책은 기껏해야 군불정책을 면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새로운 대북정책으로 녹색정책(Green Policy)을 제안한다. 녹색은 우선 생명을 상징한다. 북한의 민둥산을 녹색으로 만들자. 내가 오랫동안 부르짖어온 비무장지대의 자연보전지역화도 가능할 것이다.

헐벗은 북한의 자연환경을 복원하고 보호하는 일은 북한 주민들의 생활 기반인 농업은 물론 산업 전반을 부흥시키는 데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우리 국민이 60년대부터 꾸준히 해 온 나무심기운동이 우리 경제발전에 확실한 밑거름이 되었다고 나는 굳게 믿는다.

녹색은 또 번영과 희망을 상징한다. 햇볕정책이 북한에 조그마한 싹을 틔우게 했다면 이제 그 싹이 자라 숲이 우거지도록 도와야 한다. 주린 배나 채우라고 푼돈을 집어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일어설 수 있도록 녹색환경을 만들어 줘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환경은 자연환경을 비롯해 삶의 질 전체를 아우르는 포괄적인 개념이다. 통일 독일이 겪은 가장 큰 어려움은 동서간의 경제적 격차였다고 한다. 남북통일이 되었을 때 남한이 북한의 값싼 노동력이나 착취하는 저질 자본주의의 추태가 벌어져서는 안 된다.

▼헐벗은 北민둥산 살리기부터▼

이런 점에서 내가 생각하는 녹색정책은 ‘녹화정책(Greening Policy)’에 더 가깝다. 오랫동안 적화통일을 꿈꿔온 북한을 설득하는 일이 쉽지 않겠지만 외교력을 발휘해 그들도 함께 녹화정책에 참여하게 할 수 있다면 평화를 향한 상징적 의미 또한 크리라 본다.

나는 이 녹화정책의 선봉에 우리 과학기술인들이 앞장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삶의 질의 근본적인 향상은 궁극적으로 과학 발전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남과 북의 과학자들이 마주 앉아 서로 가르치고 배울 수 있다면 우리 과학의 기반도 훨씬 탄탄해질 것이고 남북의 경제도 더 빨리 균형을 이룰 것이다. 그동안 경협(經協)에만 치우쳤던 남북관계에 새 정부의 과학기술부가 선도적 역할을 해 주길 기대한다.

최재천 서울대교수·생물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