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외계인과 싸우는 기분이었다.”
불같은 기세를 올리던 이형택(27·삼성증권)이 힘 한번 제대로 쓰지 못하고 무너졌다.
슈퍼스타 안드레 아가시(33·미국). 15일 호주 멜버른에서 열린 시즌 첫 메이저테니스대회 호주오픈 단식 2회전에서 이형택을 3-0(6-1,6-0,6-0)으로 간단히 잠재운 그는 30대 중반의 나이가 믿어지지 않을 만큼 강했다.
경기 시간은 불과 1시간20분. 사상 첫 ATP투어 우승의 쾌거를 이룬 이형택이었지만 완벽에 가까운 세계랭킹 2위 아가시의 스트로크에 넋을 잃었다. 삼성증권 주원홍 감독은 “아가시가 전성기 때보다 더 잘 쳤다. 테니스 로봇 같았다”며 혀를 내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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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웨이트 트레이닝에 집중한 듯 근육질 몸매를 드러낸 아가시는 쉴 새없이 코트를 뛰어다녔고 첫 게임을 내준 뒤 내리 18게임을 따내는 보기 드문 장면을 연출했다.
반면 이형택은 계속되는 경기로 지쳐 있었고 아가시의 파워에 무리하게 맞서다보니 상대보다 18개나 많은 31개의 실수를 저질렀다. 아가시와의 상대전적은 3전 전패.
아내 슈테피 그라프의 열렬한 응원을 받은 아가시는 “모든 게 잘됐다. 그(이형택)가 못 쳤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아가시는 그라프를 만나면서 일이 술술 풀렸다. 97년 인기 영화배우 브룩 쉴즈와 결혼한 뒤 부진에 빠졌던 아가시는 99년 이혼에 이어 그라프와 열애에 들어갔다. 독일 출신의 그라프는 1988년 4대 메이저대회를 휩쓸며 그랜드슬램의 주인공이 됐던 테니스의 여제(女帝).
그라프
그라프를 만난 그 해 아가시는 4년 만에 다시 메이저대회 우승컵을 2개(프랑스오픈 US오픈)나 안았고 2000년과 2001년에는 호주오픈 2연패를 이뤘다. 100위 밖으로까지 밀려났던 세계랭킹도 다시 치솟았다.
2001년 10월 그라프와 결혼한 아가시는 지금은 아들까지 둔 아빠 선수. 메이저대회 7승에 통산 54승을 자랑하는 그가 레이튼 휴위트(호주)를 제치고 세계랭킹 1위에 복귀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한편 코트의 요정 다니엘라 한투코바(슬로바키아)는 이날 아드리아나 세라 자네티(이탈리아)를 2-0으로 제치고 여자단식 3회전에 합류했다.섹시 스타 안나 쿠르니코바(러시아)는 강호 쥐스틴 에넹(벨기에)에게 0-2로 무너졌다.
김종석기자 kjs012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