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사 3년만에 명동 CGV 점장에 오른 김형아씨. 주말에도 출근할만큼 바쁘지만, 틈틈이 시나리오도 쓰고 있는 작가 지망생이다. 권주훈기자 kjh@donga.com
《명동 CGV 김형아 점장(32)의 약력은 독특하다. 영화 시나리오 작가가 꿈이던 그는 ‘영화를 공짜로 볼 수 있다’는 생각에 1998년 강변 CGV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영화관을 청소하거나 팝콘을 파는 것이 그가 하는 일의 전부였다. 1999년 CGV에 정식으로 입사한 그는 초고속으로 승진해 지난해 12월 5개관을 보유한 극장의 책임자가 됐다. 이제 막 서른을 넘긴 나이였다.》
“재능보다는 열정이 우선이라고 생각해요. 매 순간을 100%로 살려 노력했죠. 정신없이 앞만 보고 살아왔는데 어느새 여기까지 왔더라고요.”
큰 눈망울과 둥근 얼굴형이 부드러운 인상을 주지만 일할 때는 카리스마가 넘친다는 게 주변 직원들의 반응.
김 점장은 “주변사람들과 대립하지 않으면서도 내가 원하는 방향대로 일을 추진해가는 것이 진정한 카리스마”라고 말했다.
그가 인천점에서 매니저로 일할 때였다. 한 무리의 조직폭력배가 ‘18세 이상 관람가’ 영화를 보러왔다. 일행 중에 청소년이 끼어 있는 것 같아 신분증을 보자고 했고 분위기는 험악해졌다. 그냥 넘어갈만도 한데 그는 끝까지 물러서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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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분위기 정말 살벌했죠. 그렇지만 관람가 등급을 철저히 지켜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어요. 처음엔 보여주기 싫다고 했지만, 잘 설득해서 결국 신분증을 받아냈죠.”
삶에 대한 그의 열정은 대학을 졸업하던 199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시나리오 작가의 꿈을 이루는 첫 단계로 KBS 광주총국에서 방송작가로 일했다. 3년 동안 정신없이 일하며 어느 정도 돈도 모았다.
그러다 문득 노래가 하고 싶어졌다. 1997년 ‘노래를 찾는 사람들’ 오디션에 응시했고 합격했다. 대학 시절 노래패에서 활동하면서 생각했던, 죽기 전 꼭 한번 해보고 싶은 일이었다.
“뭐든지 하고 싶은 건 하는 성격이죠. 시나리오 작가의 꿈도 버린 건 아닙니다. 업무가 바쁘지만 시나리오도 틈틈이 쓰고 있어요.”
그는 점장이 된 이후에도 종종 현장에 내려와 팝콘을 만들고 청소도 한다.
“사람들은 서류 업무가 훨씬 편하고 쉬울 거라고 생각하지만 아르바이트로 일하던 시절이 가끔은 그리워요. 그땐 지금보다 더 순수했고 정열이 있었죠. 화장실에서 몰래 눈물을 흘리기도 했지만 그런 경험 안 해본 사람은 진정한 ‘CGV맨’이 아니에요.”
서비스 업계에 뛰어든 지 5년 만에 그는 성격도 많이 변했다고 한다.
“서비스 직종은 철저히 고객 입장에 서야 하잖아요. 처음엔 말도 안되는 일로 불만을 토로하는 관객을 접하면 힘들기도 했어요. 성질 죽이느라 애도 많이 썼죠.(웃음) 하지만 납득할 수 있도록 천천히 설명해주면 관객도 이해하더라고요. 그만큼 세상살이에 더욱 노련해진거죠.”
그는 “나이가 어린 데다 여자라는 이유로 남성중심의 사회에서 아직 어려움도 많이 겪는다”며 “그러나 지금까지 열정 하나로 모든 난관을 헤쳐왔듯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말했다.
김수경기자 sk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