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승리 후 정권인수 기간은 그야말로 흥분과 기대가 충만한 시기다. 성취감 속에 갖가지 포부가 분출하는 때다. 새 정부의 정책 방향은 어떠한지 뉴스의 초점도 대통령직인수위에 맞춰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솔직히 말해서 요즈음 펼쳐지고 있는 정치는 대단히 낯이 설다. 개혁 또는 진보 성향이라는 접두 수식어가 붙는 등장 인물들도 그렇거니와 이들이 주장하는 정책 기조에서도 ‘혁명적’ 바람을 문득문득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선거 땐 차치하더라도 정권인수 과정에서 의욕을 앞세우면 병목현상에 빠져 들 수 있다. 지금 상황이 그런 것 같다. 선거운동과 국정은 다르며, 또 달라야 한다. 정권인수 과정은 더 이상 선거운동이 아니다. 특히 선거운동이 치열했고 갈등이 깊을수록 정권인수와 새 정권의 시작은 부드러워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갈등 구도를 방치한 채 들어섰던 과거 정권의 행로가 결국 불행했다는 기록이 있지 않은가.
▼'개혁독점'의 ▼
‘낯설다’는 말은 불안한 심정의 또 다른 표현이다. 그런 불안심리는 노무현 당선자의 선거운동 때 후보로서의 언동과 관련해서 종종 지적됐던 경우가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불안을 느끼게 하는 진원지가 제도적인 것에 있다는 점이 새롭다. 세상이 변하는데 무슨 소리냐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혁명정권이 아닌, 평화적 정권의 출범이라면 지지자와 거의 맞먹는 수의 반대자에 대한 아무런 설득 노력 없이 ‘나를 따르라’고만 할 것인가. 투표자 과반수 지지를 얻지 못한 승리였다는 점을 잊지 말기 바란다.
그래서 노 당선자와 인수위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우선 ‘개혁 독점’의 유혹에서 벗어나 그로 인한 불안심리를 줄여 나가야 한다는 점이다. 우리 개혁만이 옳다는 독선에 빠진다면 본래 시간이 걸리기 마련인 개혁은 오히려 더뎌지게 마련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공론화하고 여론을 이끌어 가는 것이 중요하다. 군사정권이 철권을 휘두를 때 ‘애국 독점’에 빠졌던 사실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국정 운영으로 부드럽게 넘어가기 위해서는 인수위의 치밀하고 섬세한 노력이 필요하다. 인수위의 임무가 방대한 공약을 우선 순위에 따라 배제하는 작업이라는 의견도 참고할 필요가 있다. 특히 유의할 것이 오만의 함정이다. 새 정부 인사를 둘러싸고 지금 줄대기가 봇물 같다니 오만의 그늘 때문 아닌지. 또 자주 불거지는 인수위와 행정부 및 재계와의 갈등 이유 역시 같은 뿌리가 아닌지. 이 모든 것을 명확히 정리하고 가야 한다. 찜찜하게 덮어 두었다가는 머지않아 정책시스템에 심각한 왜곡현상을 초래한다는 것이 교훈이다.
또 다른 불안감은 ‘동원정치’에 대한 우려에 있다. 선거운동 때 노 당선자에 대한 네티즌들의 성원은 유별났고 시민단체들과의 관계도 각별하다. 인수위에 인터넷을 통한 장관 추천 의견까지 접수하는 국민참여센터란 기구도 신설했다. 이런저런 새로운 연계 시도가 국정에 국민의사를 수렴하겠다는 뜻이라 하더라도 여론(조사)이란 포장 속엔 함정이 있을 수 있다. 동원정치를 우려하는 많은 사람이 지적하는 것이 바로 의도적인 확대 재생산을 통해 여론이란 이름으로 등장하는 왜곡의 개연성이다. 홍위병 망령을 경계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뜻이다. 나아가 여론정치를 중시한다면 우리가 지향하는 대의민주정치(代議民主政治)와는 어떤 관계인지도 분명히 해야 한다.
▼사소한 틈에서 권력 균열▼
그렇다면 사회 곳곳에 미만해 있는 불안감을 줄일 실천적 방안은 무엇인가. 이젠 그럴 듯한 말만으론 안 된다. 해답을 내 놓아야 하며, 그 확실한 방법은 실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가장 시급하고 기본적인 일이 내각 인선을 포함한 핵심 진용을 단단히 하는 것이다. 쏟아지는 이력서에 파묻히면서 선거참모들 사이엔 논공행상 갈등이 벌어질 수 있다. 당장은 사소한 틈 같지만 훗날 권력 균열 요인이 되는 경우를 여러 번 봐 왔다.
정권인수 성공 사례로 미국 레이건 행정부가 꼽히는 이유는 정권인수 때의 ‘180일 전략계획’이 성공했기 때문이다. 지금 인수위에선 각론에 빠진 조급함이 엿보인다. 격변기일수록 크게 멀리 봐야 한다. 국정엔 연습이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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