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 어나더데이’(위)와 ‘007 네버다이’.
◇ 냉전종식으로 적이 '소련'에서 '재벌'로
국내에서 개봉될 때마다 늘 화제를 불러일으켜온 007영화가 이번에는 색다르게 큰 관심을 모았다. 작년 말에 개봉된 ‘007 어나더데이’는 한국계 배우 릭윤이 출연한다고 해서 촬영 전부터 눈길을 끌더니 개봉에 즈음해서는 북한에 대한 묘사가 부정적이라는 게 알려지면서 한국민들로부터 적잖은 반발을 샀다.
영화가 개봉된 때는 마침 효순·미선 두 여중생이 미군 장갑차에 치여 참혹하게 목숨을 잃은 사건으로 반미 시위가 한창일 때라 이 할리우드 영화는 반미 감정의 표적이 됐다.
이 같은 상황은 007영화가 들어올 때마다 뜨거운 환대를 받았던 1960∼80년대엔 상상키 어려웠던 일이다.
그 환대와 반감 사이에는 40년의 연륜이 쌓인 007영화에 투영된 시대와 사회의 변화가 묻어 있다. 그러고 보면 1962년 ‘살인번호’를 시작으로 20편이 제작될 정도로 장수해온 007영화만큼 사회의 변모 과정을 읽을 수 있는 영화도 찾아보기 힘들다. 하나의 정치·사회·문화사 박물관이랄 만하다.
가령 담배를 즐기던 본드가 담배를 피우지 않게 된 것은 금연이라는 사회적인 분위기를 받아들인 결과다. 99년 개봉된 ‘언리미티드’는 시리즈 중 처음으로 제임스 본드의 담배 피우는 장면이 한 컷도 안 들어간 작품이었지만 이미 그 전부터 흡연 장면은 많이 줄었다. 그만큼 사회적으로 금연 운동이 활발해진 추세를 반영한 것이다.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007영화는 90년대 들어 주춤했다. 가장 큰 원인은 냉전의 종식이었다. 제임스 본드의 적인 소련 정보기관 KGB가 사라지자 적과 아군이라는 이분법적 구도로 전개되던 스토리의 근본이 흔들리게 된 것이다. 가장 큰 고민은 아마도 ‘적’을 찾기 힘들어졌다는 것일 것이다. 60, 70년대 만들어진 영화들은 대개 소련이나 그 주변세력을 악당으로 설정했다. ‘007 두 번 산다’나 ‘나를 사랑한 스파이’ 등의 경우 소련이 악의 제국을 형성하려는 적이었고 제임스 본드는 그들을 무찌르는 서방세계의 수호자였다. 그러나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면서 이런 설정 자체가 불가능해진 것이다. 시장이 급변하면서 종래의 007이란 상품이 취했던 마케팅 전략에 이상이 생긴 셈이다.
007 시리즈는 흔들렸다. 단적으로 영화 제작 주기가 길어졌다. 80년대까지는 2, 3년에 한 편씩, 어떤 때는 1년 사이로 영화가 만들어졌으나 89년 ‘살인면허’가 나온 이후 후속작인 ‘골든아이’가 개봉되기까지는 6년이나 걸렸다.
물론 다른 원인들도 작용했다. 007만큼 막대한 제작비를 들인 다른 액션 첩보 영화들이 많이 등장하면서 007 시리즈가 절대 강자의 지위를 상실한 것도 중요한 이유다.
97년 제작된 ‘007 네버다이’는 탈냉전 후 제임스 본드의 새로운 방향을 보여준다. 이 영화에서는 포스트 냉전시대의 새로운 적이 등장한다. 바로 세계 시장을 독식하려는 야욕을 불태우는 미디어 재벌이었다. 서방-소련 간의 국가 간 대결 대신 미디어 재벌이라는 다국적 자본을 등장시킨 것이다. 석유 재벌가 상속녀를 악녀로 설정한 99년 ‘언리미티드’도 마찬가지였다. 영화 제작 주기도 97년 99년에 이어 2002년에 개봉돼 예전의 주기를 되찾아가는 추세다.
007은 외견상으론 왕년의 명성을 회복한 걸까. 이번에 개봉된 ‘어나더데이’는 그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보여준다. 영화 속 주적이 북한으로 바뀐 것은 북한이 미국과 갈등 관계에 있는 것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대북 강경책을 쓰는 부시 행정부에 의해 ‘악의 축’의 하나로 규정됐다. 미국에서 이 영화가 높은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은 부시에 열광하는 보수주의 열풍을 반영한 것으로도 풀이된다. 이라크와의 전쟁을 앞둔 상황에서 이라크와 ‘동류국’으로 분류된 북한을 적으로 묘사한 것이 미국 관객들의 마음을 끈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미국 밖에서도 그럴 수 있을까? 독선적 외교정책으로 ‘고립’을 자초하고 있는 미국의 부시 행정부와 닮은꼴이 되지는 않을까. 007이 한국에서 맞닥뜨린 현실은 그런 가능성을 예고하고 있다.
이명재 기자 mj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