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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사회]지허스님의 차/우리차를 일본녹차와 비교말라

입력 | 2003-01-17 17:50:00

선암사 차밭에서 스님들이 차를 따고 있다. 한국의 자생차는 일본의 차밭처럼 기계로 둥그렇게 가지치기를 하지 않고 자연 그대로 키운다.사진제공 김영사


◇지허 스님의 차

지허 지음/279쪽/1만2900원/김영사

《늘 차를 곁에 두기를 좋아하던 터에 차에 관한 좋은 책 한권을 만났다. 전남 순천시 승주읍 선암사에서 전통차의 다맥(茶脈)을 잇고 있는 지허 스님의 글은 많은 깨달음을 준다. 한국 자생차에 관한 일깨움에 새삼 부끄러움도 느끼게 된다. 그동안 무조건 작은 찻잎, 어린 찻잎이 좋은 줄 알았다. 우리는 우전(雨前)이니 세작(細雀)이니, 때로 작설(雀舌)이니 하는 말에 쉽게 현혹되곤 하지 않았는가. 그러나 실상 차의 질을 좌우하는 것은 이름이나 크기가 아니다. 찻잎의 크기로 차의 품질을 따지는 것은 지리적, 기후적 환경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이 책은 알려준다. 》

‘일창이기(一槍二旗·찻잎 석장이 한 자루의 창에 두 개의 깃발이 달린 형상)’의 모양을 제일로 치는 한국 자생차는 5월 중순이어야 완숙기에 이른다는 대목에서 독자는 무릎을 치게 된다.

한국의 자생차 나무만큼 성실하면서 소박한 나무가 또 있을까. 차나무는 크지 않다. 다 자란 나무도 키가 어른 허리 만큼밖에 안 된다. 웃자라려고 애쓰지 않지만 기개는 어느 나무보다 당차다. 차나무 뿌리는 몸보다 3배나 길다. 뿌리는 곁눈질하지 않고 밑으로만 파고든다. 터를 단단히 잡고 1년을 준비하고 나서야 엄지손가락 만한 찻잎을 만들어 내민다. 이른 봄에 나온 첫 순을 따면 그 자리에 또다시 소박한 잎을 수줍게 키운다. 올곧게 중심을 버티면서도 화려하지 않은 모양새가 우리네 선비를 연상시킨다.

지허 스님이 손수 차를 따고 만드는 과정도 어찌 보면 경이롭다. 차 만들기는 정성에 다름 아니다. 여덟 번에서 열두 번을 무쇠솥에서 덖고 멍석 위에서 조심스럽게 비벼야 향과 맛을 품게 된다. 우리 차를 ‘덖음 차’라고 하는 것도 이 때문. 흔히 숙지황(熟地黃)을 만들 때 ‘구증구포(九蒸九曝)’를 한다지만 차를 덖는 일도 이 못지않은 수고다.

게다가 차 만들기는 경륜이다. 덖는 횟수를 결정하는 것도 경험에 따른 일이지만 마지막으로 차를 볶는 일도 여러 해 연륜이 필요하다. 차 볶기는 맛을 결정한다. 아궁이의 열이 지나치면 탄내가 나고 열이 덜하면 차의 향(香), 색(色), 미(味)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는다. 솥 안에서 찻잎이 ‘댓잎에 첫눈 내리는 소리’를 내고 ‘한겨울 봄날 같은 햇볕이 숲에 비칠 때 피어오르는 옅은 안개’ 같은 김이 올라야 비로소 볶기가 완성된다. 여간 까다로운 일이 아니다.

겨울이 삼한사온이라는 건 이제 옛말, 변덕스레 오르락내리락하는 기온은 내일을 가늠하기 어렵다. 싸라기눈이 흩날리는 하늘을 보면 문득 차 한잔이 그리워진다. 주전자에 물을 반쯤 채워 끓인다. 벌써 살포시 차 향내가 배어 올라오는 듯하다.

‘일창이기’의 찻잎을 들여다보고 있는 지허 스님. 차는 잎에 상처가 나지 않게 줄기째 따야 한다(왼쪽). 차를 조심스럽게 다관에 담은 뒤(가운데) 향기를 맡는다. 향기를 맡는 것은 차의 변질 여부를 알아보기 위해서다(오른쪽).사진제공 김영사

찻잔에 입을 대면서 일전의 여행을 떠올려본다. 일본의 시즈오카(靜岡) 지방을 몇 차례 다녀본 적이 있다. 일본 차의 본향이라는 곳이다. 도로변으로 줄지어 늘어선 차밭을 보며 “참 장관이다” 탄성을 올렸다. 야부기다(數北)라는 일본 차나무 수만 그루를 산줄기를 따라 심어놓고는 둥글둥글 다듬어 놓은 모양이 마치 녹색 구름밭을 보는 것 같았다.

그러나 지허 스님은 겉모양에 휘둘리지 말라고 말한다. 가지를 친 것은 기계 생산을 위한 것이요, 많은 양을 따려니 비료를 쓰고 농약을 뿌린 탓에 맛이 떨어지고 몸에 해롭다는 이야기다. 일본 차는 찻물 색깔도 녹색이고 풋내가 난다. 다갈색에 구수한 맛이 나는 우리 차와는 다르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이런 녹차가 우리 생활에 파고들어 마치 한국의 전통차인양 행세하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400년 전 침굉 스님부터 선암사의 선다맥(禪茶脈)을 이어오기를 지허 스님까지 벌써 16대째. 선암사 일주문 밖 자생차밭이 더욱 대견해 보이고 더욱 늠름해 보이는 것도 바로 일본의 녹차가 우리 차 대접을 받고 있는 세태 때문일 것이다.

언제고 선암사에 발길이 닿게 되면 가벼운 마음으로 차 한잔을 청해 마시고 싶다. 지허 스님의 이야기대로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타고난 성정대로 차를 즐기는 것이 진정한 다도(茶道)가 아닐까. 차가 곧 마음이라면, 선암사에서 평생을 전통차와 함께 보내온 지허 스님의 마음 한 조각을 얻어올 수도 있을 법하다.

주성원기자 sw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