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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보기 세상읽기]인생의 밑천을 다 써먹은 사람들

입력 | 2003-01-17 17:56:00

오수연


새해는 오고야 말았다. 인사를 주고받았고, 올해 안에 빚을 갚고 나쁜 습관은 버리겠다는 결심도 했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에서는 내 인생이 고작 이것이냐는 불만이 꿈틀거린다. 남보다 못 먹고 못 살아서가 아니다. 나라는 인간을 구성하는 조건들이 생각해보면 허약하고 어색하기 짝이 없다. 나는 아주 다른 사람이 될 수도 있었고, 밑천을 다 써먹은 것 같지가 않다. 오, 신이여! 이게 나란 말입니까? 내가 세상에 태어나서 돼야 할 게 지금의 바로 나, 맞습니까?

장 주네의 ‘도둑 일기’(인화·1994), 크리스티안느 로슈포르의 ‘병사의 휴식’(책세상·1989)은 밑천을 다 까먹기로 작정한 사람들의 방탕기다. 마약, 절도, 매춘, 동성애 같은 금기 위반 행각들이 충분히 들어 있다. 주인공들은 어렸을 때 버려져 불행하게 자랐으나 세상을 원망하지 않고, 그렇다고 불굴의 의지로 자수성가할 마음도 없다. 그들은 세상을 무시한다. 그들이 보기에 보통사람들의 건실한 일상생활은 감각과 정신의 가사 상태에서 시들어가는 것이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라고 자신의 한계를 지어놓고,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의 목록 속에서 조용히 죽어가고 있다.

왜 안 돼? 책 속의 주인공들은 묻는다. 그들은 선을 넘어서고, 칼날 같은 쾌락과 고통에 몸을 쑥 들이민다. 이것이 나쁜 짓이라서 안 했느냐, 아니면 겁이 나서 못했느냐. 너의 의지와 도덕이 정말 네 것이냐? 네가 너 자신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너를 입 닥치고 살게 만들기 위한 사회의 조작이다. 손가락, 발가락 끝까지 자신에게 솔직하려는 이 방탕아들에게는 먹고 자는 모든 일이 관습과의 싸움이다. 일반적으로 무시당하는 사회 부적응자들에 의해, 도리어 세상이 무시당할 만한 이유가 있다고 나는 본다.

그러나 ‘병사의 휴식’은 가짜다. 세상에 저항하던 전사가 마침내 휴식하게 된다는 제목이 암시하듯이 작가의 의도가 타락을 찬양하는 데 있지 않았으므로 방탕아는 여인의 품에 고꾸라진다. 밑천이 떨어지니 기어 들어오는 꼴도 보기 싫거니와 내가 참을 수 없는 것은 남자 주인공이 제딴에는 투쟁한다는 방식이다. 그는 자기를 사랑하는 여자를 학대함으로써 사회에 보복한다. 왜냐하면 그 여자가 양갓집 규수로, 위선적인 부르주아지의 퓨리터니즘이 머릿속에 꽉 차 있기 때문이다. 허위와 타협할 수 없어 자살까지 시도했던 남자가 어떻게 자기 눈앞에 있는 인간은 관념으로 취급할 수 있을까. 그가 싫어한 것은 여자의 사고방식이었을지 몰라도 학대한 것은 한 인간이었다.

사람을 제가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정신적 퇴폐다. 여자가 임신하자 남자는 울고 불며 용서를 비는데 자손에 대한 생물적 욕망 이외에 각성의 근거는 없다. 한 권 분량의 방탕 끝에 그들이 참회하며 돌아간 곳은 기성사회가 아니라 동물계다. 그들은 타락한 적이 없었다. 인간의 수준에서 동물로 추락했을 뿐이다. 사상 없는 퇴폐는 추하다.

‘신성에 이르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 확신은 정말로 모호하고 다른 증거도 없다. 사람들은 수학적인 학문으로 그 신성을 정복해 보려고들 한다. 하지만 나는 그러는 것이 두렵다. 신성은 특이하고, 그 표현은 독창적이다. 신성함의 유일한 받침목은 현세의 행복을 포기하는 것이다’.

‘도둑 일기’의 주인공은 방탕을 인간의 존재적 한계를 뛰어넘어 신의 경지에 이르려는 노력으로 미화한다. 이 맹랑한 선언은 그가 남이 아니라 자신을 바치기 때문에 말이 된다. 일상의 진부한 논리를 비웃는 데 그치지 않고 그는 그 너머의 잡히지 않는 이상, 인간이 위대하다는 증거를 탐구한다. 읽는 데 극기를 요구하는 거친 번역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뜨끔한 메시지를 전한다. 타락은 독창적인 것이다. 네게 부족한 것은 용기보다 사상이다. 네 자신의 창조자, 신이 되어라.오 수 연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