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프로야구가 82년 출범과 동시에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이유는 지역연고에 바탕을 둔 해태와 삼성의 2강 체제 때문이었다.
해태는 가장 재정 기반이 취약했지만 97년까지 16년동안 9번의 우승을 일궈내며 호남야구 돌풍을 일으켰다. 반면 재계 서열 1위의 삼성은 매년 최고의 선수를 끌어모았지만 21년만에 처음으로 한국시리즈 우승컵을 안은 지난해를 빼면 만년 준우승 징크스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바로 이 점이 야구팬을 열광시킨 포인트였다. 해태 팬은 9명의 주전을 빼면 교체 선수를 찾아보기조차 힘든 해태가 우승하는 것을 보며 카타르시스를 맛봤고 삼성 팬은 ‘올해 만큼은 어떻게 되겠지’ 하는 기대와 함께 새로운 시즌을 맞이했다.
스포츠에서 라이벌 또는 천적 관계의 2강 체제가 팬을 끌어모으는데는 특효약이란 것은 해외 프로야구나 다른 종목에서도 이미 증명된 사실이다.
일본 프로야구의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세이부 라이온스가 대표적인 경우. 센트럴리그의 요미우리는 65년부터 전대 미문의 9연패에 성공한 최고의 명문팀이지만 퍼시픽리그의 세이부가 82년부터 92년까지 11년동안 8번이나 일본시리즈 우승컵을 차지하면서 이들의 라이벌 관계는 심화된다. 이후 요미우리가 94년에 이어 지난해 또다시 세이부를 꺾으면서 천적 관계는 재역전이 됐다.
미국 프로야구에선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 뉴욕 양키스와 보스턴 레드삭스의 100년 라이벌 관계가 눈길을 끈다. 20세기초 최고의 명문팀이었던 보스턴은 1918년 전설적인 홈런왕 베이브 루스를 양키스에 헐값에 팔아넘긴 뒤 단 한번도 우승을 못하는 ‘밤비노 악령’에서 헤어나지 못했고 양키스는 트레이드 이후 날개를 단 격이 됐다.
국내의 다른 종목은 대학이 고려대와 연세대, 실업이나 프로는 삼성과 현대의 양대 구도가 그동안 팬들의 흥미를 자아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최근 프로야구 흥미가 반감된 원인중 하나가 90년대 말 이후 해태 야구단이 기아로 넘어가면서 최근 5년간 너무 침체해 삼성과의 라이벌 관계가 사라진 때문이란 분석도 가능하다.
이런 터에 해태의 법통을 이어받은 기아가 호타준족의 박재홍과 최고 마무리 진필중을 영입해 모처럼 우승을 넘볼 수 있는 전력을 갖췄으니 야구팬의 한 사람으로서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장환수기자 zangpab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