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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칼럼]최병식/"순수예술, 그거 왜 하죠?"

입력 | 2003-01-17 18:04:00


“대학과 사회를 고발하고 싶다.”

얼마 전 한 여자졸업생이 오랜만에 교수연구실을 찾아와 이렇게 자조 섞인 독백을 했다. 이 학생은 모범생이었고, 대학원을 나와 조교를 거치면서 결혼까지 포기하고 미술작업에만 충실해온 우수한 재원이요, 촉망받는 신예 작가다. 그러나 그녀는 아무리 작가생활을 열심히 해도 작품을 팔기 어려우며 대학에 취직하기도 쉽지 않다고 하소연했다.

순수예술 분야의 청년작가들이 겪는 아픔은 비단 우리나라에만 있는 일은 아니다. 문제는 거의 평생 동안 작품과 씨름하면서도 자괴감을 맛봐야 하는 경우가 너무나 허다하다는 것이다.

▼문화시장 숨은 주역인데…▼

이 같은 현실을 타개해 보려는 예술인들의 안간힘은 2823여건에 541억원을 넘어선 올해의 문예진흥기금 신청명세에서도 잘 나타난다. 결국 이 중 35.7%만이 지원대상으로 선정돼 131억8000만원 정도를 받게 됐지만, 아예 신청할 의지조차 잃은 작가들이 너무나 많다. 지난해에는 대통령의 지시로 현재 전체 문화예산의 16.2% 수준인 순수예술 분야의 예산을 2011년까지 25%로 높여 9000억원으로 늘리고, 문예진흥기금을 2010년까지 1조5000억원(현재 4144억원)으로 조성한다는 계획이 발표되기도 했으나 기획예산처와 사전 조율이 이뤄지지 않아 실현 가능성이 불투명하다. 이런 상황에서 새 정부를 맞이하게 되었다.

‘뉴 이코노미(new economy)’라는 말이 있다. 새로운 문화적 선택과 기호에 의해 경제구조가 바뀐다는 뜻이다. ‘유나이티드 컬러스 오브 베네통(United Colors of Benetton)’이라는 한 장의 포스터가 인종을 초월하면서 전 세계인의 구매력을 촉진시키기도 하고, 높이 320m의 에펠탑 하나가 프랑스의 문화적 자존을 상징하며 연간 400만이 넘는 관광객들을 불러들이는 세상이다. 2000년에 8300억달러이던 세계의 문화시장 규모가 2005년에는 1조1700억달러를 상회할 것이라는 예측은 이 같은 현상이 앞으로 더 확산될 것임을 말해주고 있다.

그러나 유럽 등 선진국에서 이 같은 문화산업의 성공이 있기까지는 무수히 많은 가난한 예술가들의 노력과 절규가 뒷받침돼 있었다. 이탈리아의 디자이너 토스카니의 세상을 돌아보는 냉철한 철학과 창의력이 있었기에 베네통의 포스터도 가능했던 것이다.

기초학문이나 이공계 기피현상처럼 어느새 예술분야에서도 경영논리가 우선시되는 분위기다. 얼마 전 새 정부의 공약사항이라며 고교 예체능 분야의 성적이 입시 내신성적에서 제외된다는 발표가 나와 세상을 놀라게 한 웃지 못할 해프닝이 일어나기도 했다. 문화생산비 소득공제, 문화벨트 조성 등을 제외하고는 새 정부의 공약 중 어디에도 정확한 수치로 뒷받침되는 순수예술 분야의 진흥계획을 찾을 수 없어 우울한 생각이 든다.

하기야 문화부문 예산이 전체 예산의 1.18%이니 과거에 비하면 획기적으로 올랐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런데도 작품구입비가 43억여원에 머물러 소장품이 4500여 점에 그치고 있는 우리 국립현대미술관의 위상은 아직도 참담하다. 수십만점의 소장품에 이미 1000억원대의 작품 구입비를 넘고 있는 외국의 유수한 미술관과 비교하면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지방의 특수미술관 수준에 불과하다고나 할까.

▼지원수준 참담해▼

정작 예술가들 쪽을 돌아보아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예술가들도 새로운 시장논리에 부응, 생각의 속도를 개선해 최소한 자기 작품을 관리하고 적응하려는 노력을 해야만 한다. 제도나 지원은 어디까지나 ‘응원군’일 뿐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지쳐 문드러지는 자신들의 그림자까지도 놓치지 않겠다는 전문가적 정체성과 철학적 의지는 어떠한 경제논리보다도 값진 생명줄이기 때문이다.

문화산업의 기반으로서 그 중요성을 더해가고 있는 순수예술 분야에 대한 새 정부의 정책이 궁금하다. 정부의 정책 전환과 예술가들의 의식 전환이라는 두 가지 축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가에 따라 21세기 한국문화의 경쟁력이 좌우될 것이다.

최병식 경희대 교수·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