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은경
아나운서가 된 후 내 이름 ‘최은경’ 앞에는 항상 ‘톡톡 튀는 신세대 아나운서’라는 말이 따라다녔다. 단아한 아나운서의 이미지와는 많이 달랐던 나는 주위 사람들의 예상을 뒤엎고 KBS 21기 아나운서 중 홍일점으로 합격했다.
하지만 기본적인 아나운서 교육을 받으면서 내가 멋진 여자 아나운서의 면모를 좀처럼 보여주지 못하자 선배들로부터 ‘골칫거리’로 찍히기도 했다. 교육 마지막 날 동기들과 모의방송을 녹화하고 선배들의 평가를 받았다. 나는 ‘에어로빅’ 현장에 있는 것으로 상황을 설정해 발랄하게 진행하려 애썼다. 그런데 주위 선배들은 황당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게 아닌가. 알고 보니 에어로빅하는 ‘주부’를 가리켜 ‘아줌마’로 발언하는 등 방송에 걸맞지 않은 언어를 거침없이 사용했던 것이다. 스스로 생각해 봐도 고개 들기 민망했다. 썰렁한 상황에서 “허허”하고 웃으며 “음, 신선하고 재밌네. 앞으로 좀 더 다듬으면 돼”라며 기를 살려주신 분이 바로 이창호 전 아나운서 실장님이다.
이 선배님은 교양 프로그램 진행자로 지금도 ‘무엇이든 물어보세요’를 매일 아침 진행하면서 MC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아나운서 스타일에서 조금 벗어나 방송을 하는 나에게 “아니 넌 왜 선배들처럼 하지 않아”하며 정해진 길로 몰아가지 않고 다양성을 인정해준 분이다. “남들과 다르다고 꼭 틀린 것이 아니다”란 선배님의 격려 덕분에 나만의 ‘톡톡 튀는’ 개성을 갖게 됐는지도 모르겠다.
지금까지 큰 문제없이 방송인으로 활동하게 된 것은 운이 좋기도 했지만 이 선배님의 가르침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런데 결혼과 미국 유학생활, 그리고 프리랜서를 선언한 최근까지 나는 선배님에게 인사 한 번 드리지 못했다. 아직도 내가 신세대 취향이어서 그런 모양이다!
최은경 프리랜서 아나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