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보면 우리 민족도 상당한 수준의 창조적 상상력을 발휘했다. 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 ‘주초위왕(走肖爲王)’의 고사도 그중 하나다. ‘주초위왕’이란 조선왕조 시대 젊은 개혁가 조광조(趙光祖)를 음해하기 위하여 그의 반대파가 꾸민 위계를 말한다. 조광조의 개혁정치로 피해를 보게 되는 훈구파측에서 궁궐 내 나뭇잎에 꿀로 ‘走肖爲王’ 네 글자를 써 놓고, 단 것을 좋아하는 곤충들이 여름 동안꿀 묻은 자리를 파먹게 했다고 한다. 가을이 되어 나뭇잎에 ‘走肖爲王’ 4 글자가 나타나자 그것을 왕(당시 中宗)에게 보이면서 走와 肖를 합치면 ‘趙’자가 되므로 趙씨가 왕이 될 징후라고 모함해 조광조를 죽이는 데 성공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이 이야기가 이긍익(李肯翊)의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같은 야사(野史)에만 나오고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즉 정사(正史)에는 안 나온다. 그래서 1997년 KBS가 조광조 관련 역사 프로그램을 방영하려 할 때 어느 대학에 연구용역을 주어 이 이야기의 진위여부를 가리게 했다. 연구팀은 나뭇잎에 꿀로 ‘走肖爲王’이라고 써서 단것을 좋아하는 곤충 옆에 놓아두는 실험을 했다. 시간이 충분히 흘러 곤충들이 나뭇잎을 긁어먹은 결과를 살펴보았더니 ‘走肖爲王’이라는 글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곤충들이 갉아먹는 것은 나뭇잎 속 수액(樹液)이었지, 나뭇잎 위 꿀 칠한 자리가 아니라는 것이 밝혀진 것이다. 이 실험에 의해 ‘走肖爲王’의 고사 내용은 자연의 존재양식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입증된 것이다.
추측컨대 조광조의 개혁정치에 기대를 걸고 그를 따랐던 유생들이 조광조의 죽음이 억울했음을 알리기 위하여 만들어낸 상상력이 ‘走肖爲王’의 고사였던 것 같다. 이처럼 어떤 상상력이 실제(reality)와 부합되는지, 혹은 실현가능(feasible)한지를 판별하는 실험을 탐색시행(探索施行)이라고 부르자. 결국 ‘주초위왕’의 고사는 KBS의 탐색시행에 의하여 실제와 부합할 수 없음이 밝혀진 셈이다.
탐색시행이란 어떤 문제를 예스(yes) 혹은 노(no), 즉 이분법(二分法)적으로 판별할 수 있는 수준까지 정의(definition)한 후 그 답을 실험에 의해 발견하는 방법이다. 토머스 에디슨이 백열등의 필라멘트 소재를 찾아낸 방법도 탐색시행이었다. 전기의 양극 사이에 어떤 물질을 삽입한 후 전류를 걸어보면서 그 물질이 빛을 낼 수 있는지 여부를 탐색한 것이다. 에디슨의 연구일지에 의하면 그는 연구실 조수(助手)의 수염까지 뽑아 실험해 보는 등 수천가지 물질을 대상으로 탐색시행을 계속해 백열등 필라멘트의 소재를 찾아냈다.
탐색시행을 통하여 발견한 지식을 우리는 노하우(know-how)라고 부른다. 요즘 우리나라 기업인 중에는 “선진국에서 기술을 주지 않아 애로가 많다”고 푸념하는 사람이 많다. “왜 자력으로 기술개발을 안 하십니까”하고 물으면 “이론을 모르는데 어떻게 개발합니까”라고 대답한다.
여기에 중대한 인식오류(認識誤謬)가 있다. 과학과 기술의 발달사를 보면 이론을 모르는 상태에서 탐색시행이 먼저 성공한 경우가 주류를 이루기 때문이다. 1903년 라이트 형제도 이론을 모르는 상태에서 무수한 탐색시행 끝에 비행기를 띠우는 데 성공했다.
1895년 당시 무명의 과학자였던 뢴트겐은 (다른 실험 도중) 우연히 X레이를 발견했다. 사진 건판을 감광시키는 것을 보면 이것은 분명 빛의 일종인데 그 정체를 이론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주위에 없었다. 그래서 미지(未知)의 빛이라는 뜻에서 (수학에서 미지의 변수를 X라고 놓으므로) X레이라고 부른 것이다. 병원에서 의사들이 X레이를 이용하여 부러진 뼈를 촬영하기 시작한 몇 년 뒤에야 X레이에 관한 이론이 나왔고, 뢴트겐은 노벨상도 받았다.
이 사례가 주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이론을 몰라도 탐색시행에 의해 기술혁신은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말이다. 우리나라 기업인, 연구원들이 이 사실을 명심하고 기술혁신에 임하기 바란다.
윤석철교수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 yoonsc@plaza.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