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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명광고]'비아그라'…사진 한장으로 OK

입력 | 2003-01-20 17:45:00


“죽이는 비주얼(시각적 효과) 한 방으로 끝냅시다!”(카피라이터)

“비주얼 없이 헤드라인과 카피로 압도합시다.”(아트디렉터)

광고제작회의를 하다 보면 이런 이야기를 종종 합니다. 쥐어짜도 신통한 아이디어가 나오지 않고, 한정된 시간을 하염없이 헤매고 있을 즈음이면 진담 반 농담 반으로 책임전가(?)를 하곤 합니다.

광고가 시각적 효과와 카피, 제품, 로고, 슬로건 등으로 만들어진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또 훌륭한 광고의 대부분이 ‘카피’와 ‘아트’가 만나 절묘한 시너지 효과를 일으킨다는 것쯤은 상식입니다.

하지만 비주얼 없이, 또는 카피 없이 만들어진 훌륭한 광고도 많습니다. 이런 광고가 성공하기란 구구 절절한 카피와 멋진 비주얼을 집어넣는 일보다 더더욱 어려운 작업입니다.

그렇다면 카피도, 제품명도 없고, 심지어 회사이름과 흔한 로고 마크마저도 없는 광고로 소비자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전달할 수 있을까요?

참조용으로 제시한 이 광고를 보십시오. 공포영화의 한 장면같이 여성이 무엇에 크게 놀라서 두 눈을 커다랗게 뜬 장면만 있습니다. 분위기 극대화를 위한 명암의 대비와 전체적으로 푸른 계통의 색상을 강조한 사진 한 장이 전부입니다. 어떤 카피도, 설명도 없습니다. 그 이상의 별다른 정보나 흔한 회사명도 보이지 않습니다.

아, 왼쪽 공간에 작지만 곤두선 중요한 물체가 하나 있군요. 직접은 아니더라도 어디서 본 적이 있던 알약입니다. 마름모 형태에 푸른색? 비아그라입니다.

왜 이 여성이 놀라는지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습니다. 알약이 있는 여백의 공간에 어떤 비주얼이 없어졌는지 충분히 상상하고도 남습니다.

처음에는 헤드라인도 넣고, 제품 패키지와 회사명도 넣어봤을 것입니다. 카피라이터와 아트디렉터는 최초의 아이디어에 만족하지 않고 극적 효과를 위해 회의에 회의를 거듭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불필요한 요소는 과감하게 떼어버리고 최소한의 핵심만 남겨 뒀습니다.

어느 원로 카피라이터가 말한 ‘때로는 무(無)카피도 카피다’라는 말이 가슴으로 다가옵니다.

카피나 비주얼이 적을수록 광고의 기능은 빨라지고, 효과는 더 강력해집니다. 카피나 비주얼마저 사족이 된다면 과감히 버리는 일은 무엇보다 훌륭한 크리에이티브가 될 수 있습니다.

군더더기 없이 하고픈 이야기 다 하고, 소비자들의 뇌리에 강하게 남는 심플한 광고는 모든 광고인들의 꿈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아시아 2위의 광고시장 덩치에 걸맞게 누구나 알 수 있는 ‘세계적인 제품’과 그에 걸맞은 ‘세계적인 명광고’가 빨리 나오기를 기대합니다.

상암커뮤니케이션즈

박석하 크리에이티브디렉터 scarpark@sanga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