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는 8일 ‘미래발전계획’ 발표를 통해 2020년까지 달성해야 할 10개 분야 370여개 시책을 인천시의 꿈이자 청사진으로 제시했다.
제목만 보면 다른 행정기관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신선함이 엿보인다. 올 4월까지 도시기본계획안을 수립하고 품격 높은 공동체 주거문화를 정착시키는가 하면 수해 상습지를 없애고 접경지역 개발사업도 시작한다. 또 인천을 물류중심지로 발전시키기 위해 송도 신항을 건설하고 항만 운영체계를 개선하며 해양도시 이미지 제고를 위해 해양축제도 정착시킬 계획이다. 그러나 곰곰이 따져 보면 이 모두가 ‘속 빈 강정’ 같다.
물론 계획 수립 과정에 워크숍과 시민여론 수렴 등 나름대로 성의를 보이긴 했다. 그러나 왜 지방자치단체가 이렇게 많은 사업을 해야 하는지 이해하기 힘들다. 과연 이 사업들이 일개 지방행정 조직만으로 달성할 수 있는 것이며 정말 시민들에게 필요한 것일까. 의문의 끝자락에는 예산문제가 연계돼 있다. 계획대로라면 국제 비즈니스 분야의 23개 시책에 11조7000여억원이, 물류 분야에 12조3000여억원이 각각 필요하다. 그것도 2002년 기준으로 외국자본과 국가 예산을 포함한 액수다. 그러나 정작 인천시민의 복지에는 1200억원, 여성 분야에는 290억원만 책정돼 있을 뿐이다.
정치인이 자치단체장이 되면 표 되는 일이, 기업인이 자치단체장이 되면 돈 되는 일이 우선시되는 시정 운영 방식이 과연 타당한가. 과연 뜨는 사업, 홍보성 정책에 열을 올리는 것이 우리가 원했던 지방자치의 참모습일까. 백 번 양보해 분배보다는 성장을, 삶의 질보다 일자리를 선택했다고 치자. 하지만 미래만큼 중요한 것은 현재다. 배 고플 때 밥 먹고, 아플 때 병원 가고, 뛰고 싶을 때 운동장에 갈 수 있는 삶도 항만이나 공항만큼 중요하다. 지금 내놓는 장밋빛 계획은 말로는 시민들을 위한다면서 시민들의 뒷골목엔 관심이 없다. 정부도 자치단체도 공익과 공동선의 추구가 행정 고유의 사명이자 정책의 기초라는 원칙을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신도시라는 이름의 청사진은 인천에만 있는 게 아니다. 그리고 항구가 있는 자치단체들은 언제나 대규모 신항만을 꿈꾼다. 동네마다 대학을 외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요즘은 학생미달 사태에 전전긍긍하고 있다. 이들도 한때는 ‘비전과 정책’의 이름으로 추진했던 것이다.
한때 ‘뱃길로 서울까지’라는 ‘비전’도 있었다. 그러나 인천시 홈페이지 표현대로 2005년에 서울로 가는 배를 타기는 어려울 것 같다. 환경단체뿐 아니라 노무현 대통령당선자도 경인운하 건설에 신중을 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또한 인천시의 미래발전계획 가운데 상당 부분 손질이 불가피하다는 암시이기도 하다. 비전의 너울을 쓴 수많은 계획을 보면서 생각해본다. 10년 후에도 지금처럼 여성과 시민복지가 행정으로부터 홀대 받아야 하는가. 그래서일까. 역설적이게도 임기 중 이것만은 절대 안 한다는 약속이 시민에게는 차라리 비전으로 다가온다.
‘비전’으로 포장된 ‘파괴’의 현장을 보면서 ‘까치밥’의 정신을 생각해 본다. 상처투성이인 삶의 현장을 넘겨주기보다 후세에 꿈을 남겨주는 세대간 정의가 그립다.
김민배 인하대 교수·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