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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프리즘]박성희/'인터넷 생태계' 무슨 일이…

입력 | 2003-01-21 18:44:00


지난주 국회에서 열린 한 조찬모임에서 어느 의원이 질문을 던졌다. “익명의 네티즌이 중심이 된 사이버 테러리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요지의 질문이었다. 그 의원의 어투는 강경했고, 어감은 비장했다. 마침 그의 손에는 민주당 ‘살생부’ 명단이 실린 신문이 들려 있었다.

하긴 두려워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이름도 모르는 누군가가 내 이름에 먹칠을 해 나의 사회적 생명줄을 끊는다면? 생각만 해도 식은땀이 흐를 일이다. 인터넷에 별로 익숙지 않은 세대는 걱정할지 모른다. 인터넷이 서울 광화문으로 사람들을 불러모으고, 특정 후보의 당선을 돕더니, 이젠 국회의원의 명운도 좌지우지하려 든다고 말이다.

▼‘해악’ 있지만 자정기능도 존재▼

‘인터넷 살생부’ 소식을 전하는 종이신문들도 심각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비교적 넓은 지면을 할애해 살생부 내용을 자세히 전하면서 ‘흉흉한 민주당’ ‘인터넷판 문화혁명’ ‘배후 의구심’ ‘당내 교란용’ ‘더 큰 보복 칼날’ 같은 고감도 어휘들을 총동원했다. 종이신문들은 알까? ‘인터넷 혁명’은 오프라인에서 완성된다는 사실을. 그들은 ‘살생부’ 소식을 번듯하게 보도해 줌으로써 그 ‘얼굴 없는 테러리스트’에게 반짝거리는 구두를 신겨준 셈이 됐다.

인터넷이 두렵다면, 그것은 네티즌에게 주어진 무한한 ‘언론자유’ 때문이다. 통제되지 않는 자유는 늘 버겁다. 그러나 언론의 자유를 주창한 초기 철학자들의 논의를 되새겨보면, 인터넷에서의 무한한 자유 역시 겪어보지 못한 일이라 생경할 뿐, 무작정 경계할 일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실낙원’의 저자인 존 밀턴은 언론자유의 경전으로 꼽히는 그 유명한 ‘아레오파지티카’에서 “(절대왕정의) 검열조례는 성공할 수 없다”는 논지를 폈다. 아무리 삭제와 검열을 해도, 결국 사람들의 생각은 알려지게 돼 있다는 논리다. 200년 후 존 스튜어트 밀은 ‘자유론’에서 “도전 받지 않는 진실은 죽은 도그마와 같으므로 도전을 받아야 하고, 모든 의견에는 얼마간의 진실이 있다”고 했다. ‘아레오파지티카’를 100년쯤 앞선 조선시대 율곡 이이 선생의 통찰 역시 빼놓을 수 없다. 율곡 선생은 겸선(兼善)과 공선(共善)을 바탕으로 한 올바른 다수의견인 ‘공론’에 의한 정책 수행을 강조했는데, 여기서 공론이란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의견이며, 나라의 원기(元氣)를 뜻했다.

물론 밀턴의 시대에는 오늘날과 같은 언론이 없었고, 율곡 선생의 정치철학은 왕도정치의 실현에 있었다. 그럼에도 동서와 세기와 정치체제를 넘어 공통된 선이 있다면 바로 자유의 중요성이다. 그런 자유는 자연처럼 스스로 조정하려는 본능이 있다.

다시 현실로 돌아와 생각해보면, 인터넷 역시 ‘자유’라는 원기로 인해 살아 꿈틀거린다. 문제가 있는 한편에서는 자율과 균형의 희망적인 모습도 함께 보인다. ‘촛불시위’ 자작극은 출발점도 인터넷이지만, 자성이 이뤄진 곳도 인터넷이다. 5060세대를 다룬 신문의 기사를 읽은 한 젊은 네티즌이 부모님에게 용기를 북돋워 주자는 의견을 올린 곳도 바로 인터넷이다. 자유게시판에는 신랄한 비판 의견과 적극적인 옹호론이 나란히 실린다. 매너 없는 언사는 거기서도 비난받는다.

나는 그 국회의원을 포함해 인터넷의 해악을 우려하는 분들에게 “염려하지 마시라”고 답하고 싶다. 인터넷 세상에도 오폐수를 무단 방류하는 악덕업자들이 없으란 법이 없고, 정보 고속도로에서 가끔은 교통사고도 난다. 그러나 사이버 공간이 자유의지를 지닌 네티즌들의 자연스러운 모임의 장이라면, 인터넷 생태계에도 분명 질서와 먹이사슬이 있고 자연정화와 자연복원과 같은 기능이 작동할 것이다. 눈이 오고 비바람이 불거나, 간혹 산불도 나겠지만, 그 후에는 어김없이 파릇한 생명이 돋는 것처럼….

▼재앙 막으려면 ‘제 몸 돌보듯’▼

이쯤 되면 네티즌들은 알 것이다. 무한한 자유가 선으로 기능하려면, 그래서 믿고 쇼핑하고, 맘놓고 비판하고, 범죄 없는 정보마을을 활보하려면 인터넷 환경을 제 몸 돌보듯 해야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무심코 흘려버린 스팸메일, 장난삼아 퍼뜨린 바이러스, 화장실 낙서만도 못한 거친 말들은 모두 환경재앙이 되어 돌아오는 것이 자연의 법칙이다.

박성희 이화여대 교수·언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