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꼭 사랑하고 싶은데/사랑하고 싶은데 너는/내 곁에 없다. 사랑은 동아줄을 타고 너를 찾아/하늘로 간다…이제야 알겠구나/그것이 사랑인 것을.’ 팔순의 시인 김춘수는 지난해 아내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을 ‘비가(悲歌)’로 토해냈다. 연전에 평생의 반려자를 먼저 보낸 뒤 남은 것은 시 쓰는 일밖에 없다는 양, 그는 ‘내 살이 네 살에 닿고 싶어한다’는 절대 고독 안에서 ‘너는 너를 새로 태어나게 한다’고 했듯 스스로도 새롭게 태어났다. 우리 근현대 시사에 남을 만한 최고령 시인의 작품집을 탄생시켰으니.
▷살면서 겪는 일 중 가장 스트레스가 높은 것이 배우자의 죽음이다. 남편을 잃은 여자보다 아내를 사별한 남자가 훨씬 더 견디기 힘들어 한다고 전문가들은 전한다. 아무리 ‘두 번 웃는다’는 속설이 있다해도, 동반자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던 나이 든 남자들은 특히 심한 상실감을 경험한다. 최근 심장병으로 부인을 떠나 보낸 가수 조용필씨가 상우(喪偶)의 그 힘든 상황에서도 심장병 어린이를 돕는 데 아내의 유산을 쓰겠다고 밝혀 아릿한 감동을 준다. 사실 아내가 원했던 것은 남편이 평소 꿈꾸던 음악교육사업을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남편은 아내를 앗아간 심장병을 치유하는 데 아내가 남긴 마지막 선물을 쓰려 한다. “하늘에 있는 아내도 나와 뜻을 같이 할 것”이라며. 어긋난 선물 속에서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오 헨리의 단편 ‘크리스마스 선물’과 영화 ‘사랑과 영혼’을 함께 보는 느낌이랄까.
▷서로 뜻이 어긋나서 더욱 아름다워진 유산 쓰임새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조씨와 고 안진현씨는 거의 완벽한 보완관계였다고 한다. 조씨가 나무라면 고인은 흙이었다. “음악이 먼저이고 가정은 그 다음”이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남편에게 바가지를 긁기는커녕 “그이는 음악만 하다보니 세상물정을 잘 모른다”며 매니지먼트를 맡아했다. 결혼 3년 만인 1997년 여성동아와의 인터뷰에서 “늙으면 결국 꼬랑지 내리고 마누라에게 기댈 것”이라던 조씨를 아내는 오래 기다려주지 못했다. 병상의 아내에게 미역국을 끓여줬더니 맛있게 먹더라는 것이 조씨가 마지막으로 꼽은 기뻤던 일이다.
▷‘국민가수’ 조용필씨가 할 일이 더 있다. 6년 전 인터뷰에서 “로드 스튜어트가 아내를 위해 곡을 썼듯이 나도 모든 남편이 아내에게 주는 마음을 대표해서 아름다운 곡을 만들고 싶다”고 한 것처럼 지금의 슬픔을 음악으로 승화시키는 일이다. 김춘수의 ‘쉰한편의 비가’ 못지 않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부곡을 조용필씨에게서 들을 수 있기를 바란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