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가까운 친구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디지털카메라를 사고 싶은데 어떤 게 좋은지 가르쳐 달라는 것이었다. 인터넷을 통해 골랐다며 이 모델 저 모델의 장단점을 캐묻는데 아쉽게도 한국 업체가 만든 제품은 들어 있지 않다. 대중적인 용도면 한국 업체가 만든 제품도 싸고 쓸만하다고 했더니 “아무렴 일본 메이커만 하겠냐”는 반응이다.
디지털카메라나 디지털캠코더 관련 인터넷 동호회 사이트를 들러 봐도 사정은 비슷하다. 네티즌의 관심은 온통 일본산 제품들에 몰려 한국 업체들이 만든 제품은 천덕꾸러기 신세다. DVD플레이어나 홈시어터 시스템 등 다른 디지털 가전 제품도 마찬가지다. 한국의 디지털 가전 시장이 커지고 있지만 대부분을 일본 업체들이 잠식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한국산 디지털 가전에 대한 세계 시장의 인식이 달라지고 있는데 한국 소비자들의 생각만 바뀌지 않는 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한국산 디지털 가전제품이 밖에서는 많은 외화를 벌어들이고 있지만 정작 안방에서는 푸대접을 받고 있는 셈이다.
밖으로 눈을 돌려 보자. 삼성전자는 지난해 미국 시장에서 8㎜ 캠코더 점유율 2위, DVD플레이어 점유율 3위를 차지했다. 최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국제 가전쇼(CES 2003)에서는 하드디스크를 내장한 초소형 디지털캠코더와 고화질 DVD플레이어를 선보여 해외업체 관계자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LG전자의 DVD리코더나 청색광 리코더 등도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과 디자인으로 극찬을 받았다. ‘디그IT’라는 미국의 디지털 가전 전문지는 한국 중소기업 아이리버의 MP3플레이어 ‘슬림X’를 두고 “소니가 참고해야 할 혁신적인 제품”이라는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한국 소비자들이 외산 제품을 선호하는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겠지만 과거로부터 이어져온 뿌리깊은 선입견이 작용하는 것도 사실이다. 세계 무대로 한창 도약하는 한국산 디지털 가전이 지금 필요로 하는 것은 자국 소비자들의 애정어린 관심이 아닐까. 누가 보아도 감탄사가 절로 나올 만한 제품 개발에 제조업체들이 계속 힘을 쏟아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김태한기자 경제부 freewil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