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식품을 차례상에 올리지 않겠다고요? 힘들걸요.”
유통업체 식품구매 담당자(바이어)들의 말이다. 신세계 이마트 나물 담당자 장경철 과장은 “고사리 도라지 숙주나물 등 제수용 나물류에서도 중국산과 국산의 값 차이가 2, 3배가량 나는 데다 국산은 그나마 물량이 달려 찾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수입 먹을거리가 ‘알게 모르게’ 한국인의 식탁을 점령하고 있다.
한국 특산물이라고 생각해온 품목들 중에 수입품이 의외로 많은 것.
▽이것도 외국산이에요 ?=대형 할인점을 비롯해 시장에서 국산 재첩을 보기란 ‘하늘의 별 따기’처럼 어렵다.
한해 국내에서 소비되는 재첩 가운데 국산은 고작 6.7%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모두 중국에서 수입한다. 해양수산부 관계자는 “섬진강 재첩은 섬진강에 가야 먹을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해장국 재료로 그만인 노르스름한 ‘황태’도 국산은 거의 없다. 원재료인 명태가 동해 근해에서는 씨가 말라 러시아 해역에서 잡아 대관령 진부령 등에서 말릴 뿐이다. 이때 원산지는 ‘러시아산’으로 표시된다.
최근에는 원산지를 북한으로 표시한 황태가 국내에 다량 유통되고 있다. 이도 러시아 해역에서 잡아 북한 또는 중국에서 말린 뒤 북한을 통해 들여오는 것들이다.
입안에서 착착 감기는 산 낙지도 지난해 중국산이 전체 유통량의 60%를 넘었다. 냉동 낙지는 100% 중국산으로 봐도 무리가 없다.
냉동낙지는 낙지볶음이나 탕 등에 주로 쓰이는 만큼 이들 음식은 모두 중국산 낙지로 만들어지는 셈. 지난해 냉동낙지 국내 소비량은 2만3840t이었지만 국내에서 생산된 냉동낙지는 단 1t도 없었다.
군것질감으로 애용되는 쥐포 역시 국내산은 드물다. 지난 한해 쥐포 소비량 가운데 국산 비율은 23.2% 정도. 이에 비해 베트남 등지에서 들여오는 물량은 2000년 3312t, 2001년 5337t, 2002년 6808t으로 갈수록 늘고 있다.
쥐치가 별로 안 잡히자 시중에는 수입 명태살로 만든 ‘유사 쥐포’가 쥐포로 버젓이 유통되고 있다.
▽식탁을 점령한 수입 농축수산물=이뿐만이 아니다. 수산물 이외의 주요 먹을거리도 외국산 비중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제수용으로 빠질 수 없는 쇠고기도 자급률은 95년 51.4%에서 2001년 42.8%로 떨어졌다. 2002년에는 34.3%까지 떨어진 것으로 추산된다. 한우 고기가 인기지만 실제 먹는 쇠고기 10점 중 7점은 수입 쇠고기라는 얘기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80년 70%였던 칼로리자급률이 90년 62.6%에 이어 2001년 49%로 절반 이하로 떨어진 상태다.
칼로리자급률은 한국인 1명이 소비한 칼로리에서 국산과 외국산이 차지하는 비율을 뜻한다.
이 연구원 이정환 원장은 “수입 먹을거리는 일반인이 느끼는 것 이상으로 우리 가까이에 와 있다”며 “앞으로 더 많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불투명한 유통과정=하지만 수입 농축수산물이 식탁에 오르기까지는 불투명하고도 복잡한 단계를 거친다. 껍데기를 깐 조갯살, 곱창 등 쇠고기 부산물, 다진 마늘, 참기름 등 원재료가 가공되면 외국산과 국산을 구분하기 어렵다. 때문에 외국산은 주로 가공 처리돼 음식점에 공급된다.
한 유통업체 관계자는 “국산과 중국산을 섞어 파는 새우살이 시장에 나와 골머리를 앓고 있다”며 “일단 섞어 놓으면 누구도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감쪽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배추도 중국 등에서 수입되고 있지만 유통경로는 확인할 수 없다.
농림부 관계자는 “배추가 지난해 9월 1500t, 12월 242t이 중국 네이멍구 지역과 산둥성 지역에서 국내에 들어왔다”며 “수입 배추가 도매시장에도 풀리지 않아 어떻게 유통됐는지 추적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로 인해 김치 제조업계에서는 중국산 배추를 몰래 들여다 쓰는 업체가 있다는 소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 민승규 박사는 “수입 농축수산물의 국내 유통 실태를 제대로 파악하는 기관이 없다”며 “소비자와 농어민을 위해 수입 먹을거리의 유통과정을 제대로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헌진기자 mungchii@donga.com
박 용기자 park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