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美프로야구]“병현, 힘 빼”

입력 | 2003-01-22 18:05:00


“선발할래? 마무리할래?”

투수들에게 이같이 물어보면 백이면 백 “선발하겠다”고 말한다. 마무리는 사실 투수들의 기피보직. 매일 등판대기해야 하는 피곤함 때문이다. 반면 선발은 5일에 한번씩만 마운드에 오르면 돼 컨디션 조절이 쉽다. 또 연봉과 팬들의 관심도 선발쪽이 훨씬 낫다.

‘한국산 핵잠수함’ 김병현(24·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이 미국 프로야구 진출후 줄곧 “선발시켜달라”며 구단에 요구한 이유도 바로 이 때문. 게다가 장기적으로 볼 때 24세의 어린나이를 감안하면 싱싱한 어깨를 연투로 상하지 않게 하기 위해선 선발이 좋다.

하지만 그가 선발로 돌아섰을 때의 성공가능성은 아직 미지수. 일단 스프링캠프에서 선발테스트를 받기로 했으나 메이저리그엔 언더핸드스로 선발이 없다. 밑에서 던지는 투수들은 많은 이닝을 소화하기 힘들고 공이 빠르지 않아 타순이 한두바퀴만 돌면 상대 타자들의 눈에 익어 난타당할 가능성이 많기 때문.

이를 증명하듯 김병현은 99년 애리조나 입단후 4시즌 동안 딱 한번 선발로 나서 망신을 당한 적이 있다. 2000년 9월26일 콜로라도 로키스와의 원정경기에서 2와 3분의1이닝 동안 홈런 2개를 얻어 맞는 등 4피안타 4볼넷으로 4실점한 것.

주위의 비관적인 전망에도 불구하고 김병현은 과연 ‘잠수함 선발’로 통할 수 있을까. 누구보다 그를 잘 아는 이강철(기아 타이거즈)과 주성노감독(인하대)은 “선발로도 성공할 가능성은 있지만 그전에 현재의 약점을 바로 잡아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이강철은 89년 프로입단후 10년연속 두자리 승리의 대기록을 세운 국내 ‘잠수함 선발’의 원조. 김병현은 출국전 광주에 머물면서 광주일고 13년 선배인 이강철로부터 4일간 함께 훈련하며 ‘특별교습’을 받았다.

현역시절 실업야구에서 제일은행을 상대로 노히트노런을 기록하기도 했던 언더핸드스로출신 주성노감독은 김병현이 98년 방콕아시아경기대회에 출전했을때의 ‘1기 드림팀’ 사령탑이었다. 따라서 둘은 누구보다 김병현을 잘 파악하고 있다.

힘안들이고 부드럽게 피칭하는 걸로 유명한 이강철은 “우선 딱딱한 투구폼을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미국으로 건너간뒤 동료들 스타일에 익숙해진 탓인지 힘으로만 던지는 경향이 있다. 하체를 쓰지 않고 상체로만 우격다짐으로 던진다. 1,2이닝은 그런 폼으로 통할지 몰라도 많은 이닝은 소화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98년 방콕아시아경기대회에서 김병현이 중국전 선발로 나가 9연속 탈삼진을 잡아낼때의 투구폼을 기억하는 주성노감독도 “원래 스태미너와 지구력은 뛰어난 선수라 선발로도 별 무리가 없을 것 같은데 문제는 힘에 의존하는 투구스타일이다. 상대를 힘으로만 제압하려다 보니 변화구의 각도 그리 예리하지 못하고 밋밋하다”고 말했다.

이강철과 주성노감독의 얘기를 종합해보면 ①현재의 무리한 투구폼을 바꾸고 ②각도 큰 변화구를 개발하며 ③삼진 욕심을 버리고 맞춰 잡아 ④투구수를 줄인다면 분명히 성공가능성이 있다. 누구보다 자신의 문제점을 잘 아는 김병현이 스프링캠프 기간동안 단점을 고쳐나갈 수 있을 지가 열쇠다.

김상수기자 ssoo@donga.com

◇김병현 보직 4가지 시나리오

① 딱딱한 투구폼 변경

② 각도 큰 변화구 개발

③ 삼진 욕심을 버려라

④ 투구수 줄여야 성공

김병현의 보직은 어떻게 될까. 이 문제는 시즌 개막을 두달여 앞둔 현재에도 여전히 진행형이다. 트레이드 불씨가 완전히 사라진 것도 아니다. 과연 어떤 경우의 수들이 있을까.

▽선발 전업

이대로만 되면 최고다. 선발은 김병현이 미국 진출 첫해인 99년부터 줄기차게 원했던 일. 그러나 상황이 간단치 않다. 랜디 존슨, 커트 실링의 최강 원투펀치가 건재하고 3선발은 신시내티 레즈에서 이적한 엘머 드센스로 굳어진 상태. 남은 2자리를 놓고 중견 미구엘 바티스타, 유망주 존 패터슨과 경쟁해야 한다.

▽마무리 유임

사실 가장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봅 브렌리 감독은 매트 맨타이에게 마무리를 맡길 것이라고 올해 마운드 운용 계획을 밝혔다. 맨타이는 김병현에 앞서 2000년 여름까지 애리조나의 뒷문을 지켰던 원조 마무리. 하지만 지난해 부상에서 복귀한 그는 평균자책 4.73의 성적이 말해주듯 구위가 많이 떨어졌다는 평가다.

▽중간계투 추락

최악의 경우다. 김병현은 자존심을 접어야 하고 애리조나로서도 중간계투에게 325만달러의 고액을 지급하는 예산 낭비를 해야 한다. 선발 경쟁에서 탈락하고 맨타이가 제 몫을 할 경우다.

▽깜짝 트레이드

세 번째 경우와 시즌중에라도 애리조나의 구미에 딱 맞는 트레이드 카드가 나올 경우 예상할 수 있는 시나리오다. 예를 들면 최근 2루수 크레이그 카운셀이 부상을 당한 애리조나가 마무리가 없어 고민인 보스턴 레드삭스와 빅딜을 할 수도 있다.

장환수기자 zangpab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