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생명의 기적’(2000년 1월)과 ‘잘 먹고 잘 사는 법’(2002년 1월)을 방송했을 때 상당수 시청자들은 매우 흥분된 상태로 프로그램을 받아들였다. ‘아, 저렇게 물 속에서 아이를 낳아야만 좋은 거구나…’, ‘아,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고기 안 먹고 유기농 야채만 많이 먹는 것이구나…’.
나름대로 이렇게 단순한 결론을 내리고 바로 행동에 들어간 시청자들의 모습은 나를 몹시 당혹케 했다. 이 프로그램의 제작동기는 한마디로 ‘그동안 잊고 살아온 삶의 기본을 되살리자’는 것이었는데, 이런 과격한 반응들은 우리가 그동안 태어나 먹고 사는 기본에 대해 얼마나 제대로 된 정보를 갖지 못했는가를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다. 곧이어 일부 관련 생산업자들과 그들의 논리에 찬성하는 소수 전문가들로부터 ‘시청자들이 보여준 극단적 쏠림 현상의 원인 제공자’라는 이유로 역풍을 받아야 했다.
▼다른 시각 보여주고 싶어▼
가축을 먹더라도 동물 복지와 환경도 생각하며 키우자고 주장했더니 더러운 환경에서 항생제 먹여 키워도 나라에서 다 안전성을 보장하니 아무 탈이 없다고 비난을 퍼붓고, 영양 과잉의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동물성 음식보다는 야채를 많이 먹어야 한다고 했더니 한국인의 영양상태로는 아직 고기를 더 먹어야 한다며 엉뚱하게 나를 채식주의자로 몰기도 했다. 심지어 분만실이 무슨 놀이터냐고 항의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극히 제한된 분야의 전문성을 가지고 과학으로 그럴 듯하게 포장해 시대에 뒤떨어진 논리인 줄 모르고 힘으로 밀어붙이는 일부 업자들과 이에 편승한 전문가들, 그리고 자연의 질서를 거스르고 인간의 탐욕에 생명의 존엄성을 제물로 삼는 비인간적 생산방식을 고수하는 사람들, 나는 비상식을 상식이라 우기는 그런 사람들과 더 이상 다투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나의 예측이 일부 적중한 것도 있었는데 이런 폭발적 반응은 곧 씻은 듯이 망각의 세계로 숨어버리고 말 것이라는 거였다. 떨어졌던 제왕절개수술 비율은 다시 상승곡선으로 돌아섰고, 1년도 안 되어 친환경 먹을거리에 대한 소비자들의 각오가 다시 시들해짐을 느끼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성적인 시청자들의 요구로 출산문화와 음식문화의 기본 뿌리가 바뀌고 있는 현장들을 심심찮게 목격하고 적잖은 보람과 희망도 느낀다. 첫술에 배부를 수 없기에 나는 이런 흐름에 가속도를 붙여나갈 계획을 세우고 있다.
올 한 해 나의 꿈은 앞으로 제작할 다큐멘터리 ‘환경의 역습’을 통해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 진 빚을 조금이라도 갚게 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오염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는 청정시대를 살던 조상들처럼 무턱대고 음식을 골고루 먹으라는 말이 더 이상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을 한해 동안 증명해 보이고 싶다. 이미 우리가 먹는 음식 대부분이 과거처럼 사람이 골고루 먹을 만한 음식이 아니다. 이런 음식환경에 몸 안에 저항의 무기를 제대로 갖추지 못한 우리 아이들이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어 있다. 또한 우리가 무심코 소비하는 물건들과 우리를 둘러싼 생활 환경이 얼마나 자연의 질서와 어긋나 있는지, 우리는 도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삶과 연결된 환경 전반을 점검해보고 지속적으로 실천 가능한 친환경적 삶의 대안을 찾고 싶다. 그러나 경험으로 미루어 볼 때 분명 내 앞날의 여정은 순탄치 않을 것이다.
▼비난과 정면대결 '짜릿한 도전'▼
내가 일상적 삶과 연결된 생명과 환경 문제에 자꾸 몰두하는 이유는 우리가 서구식 소비 문화의 패러다임 속에 매몰돼 살면서 얻는 것보다는 자신도 모르게 잃는 게 더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의 제작과정은, 공존의 문화보다 개인의 이익을 중시하는 우리들의 단점과, 잘못을 알아도 너무 쉽게 용서해 버리는 집단적 망각 문화에 대한 도전이 될 것이다. 나에게 돌아올지도 모를 비난과 우려의 시각을 나는 신선한 자극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 그리고 정면 승부를 하고 싶다. 프로에게 그것보다 더 매력적인 자극은 없다.
박정훈 SBS P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