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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화제]재소자 복서 ‘과거’를 KO시키다

입력 | 2003-01-23 18:03:00

프로복싱 신인왕전 슈퍼페더급 결승전에서 박명현씨(왼쪽)가 김영준의 얼굴에 강한 왼손 훅을 성공시키고 있다.전영한기자



링에서 내려오자 가장 먼저 달려온 사람은 아버지였다.

부자(父子)는 말없이 끌어안았다. 아버지 박성택씨(49)의 눈에서 눈물이 줄줄 흘렀다. 눈가가 찢어져 피가 흐르는 아들의 눈에도 눈물이 고였다. 5년만의 포옹이었다.

23일 서울 창동고등학교 체육관에서 열린 제30회 프로복싱 전국신인왕전 슈퍼페더급 결승. 군인 복서 김영준(21·은성체육관)에 심판 전원일치의 판정승(3-0)을 거둔 박명현씨(24)는 천안소년교도소에 수감중인 재소자 복서다. 고교때 가출한 뒤 97년 2월 술자리에서 시비 끝에 흉기를 휘둘러 살인죄로 단기 5년, 장기 7년을 선고받았다.

빗나가기만 하던 박씨는 98년 1월 교도소 내 충의소년단 복싱부에 들어가면서 새 인생을 찾았다. 매일 4시간이 넘도록 샌드백을 두드리면서 그는 지나온 삶을 반성했다.

“나 자신을 이기기 위해 복싱을 시작했습니다. 훈련을 통해 절제심과 인내력을 기르고 싶었습니다. 내가 스스로를 다스리지 못해서 사고를 냈으니까요.”

프로복싱 슈퍼페더급 신인왕에 오른 박명현씨(왼쪽)와 아버지 박성택씨가 경기가 끝난 뒤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고 있다. 전영한기자

박씨의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성실함을 인정받아 복싱부 주장까지 맡았고 1급 모범수로 거듭났다.

그를 복싱으로 인도한 사람은 20년째 충의소년단원을 지도하고 있는 최한기 사범(46). 현역선수시절 그는 82년 링에서 숨진 ‘비운의 복서’ 김득구의 라이벌이기도 했다. 최씨는 “글러브를 끼기에 앞서 마음을 다스리는 법부터 가르쳤다. 기질이 강하고 기량이 뛰어나 프로선수로도 성공할 가능성을 보였다”고 말했다.

박씨는 지난해 11월 연습하다 갈비뼈에 금이 갈 정도로 ‘집념의 복서’. 이날 결승전에서도 그는 잔주먹을 맞아 피를 철철 흘리면서 상대를 거칠게 몰아붙여 승리했다.

경기가 끝나자 천안소년교도소측은 즉석에서 박씨에게 4일간의 ‘귀휴허가증’을 내주었다. 박씨는 2004년 5월 만기출소 예정. 그러나 교도소측은 그가 운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법무부에 가석방을 건의할 계획이다.

이날 경기장에는 교도소직원 30여명과 박씨의 고향인 인천 영종도 주민 60여명 등 100여명이 모여 박씨를 열렬히 응원했다.

아버지와 함께 꿈에도 그리던 고향으로 떠난 박씨는 “복싱을 하면서 나를 믿어주는 따뜻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들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반드시 사람다운 사람이 되겠다”고 말했다.

그의 꿈은 유명우 같은 세계챔피언이 되는 것. 이번 우승은 그 꿈을 이루기 위한 시작일 뿐이다.

이원홍기자 bluesk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