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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8월의 저편 225…강의 왕자(1)

입력 | 2003-01-23 18:21:00


유미리 연재 소설

8월의 저편 225

강의 왕자1

인혜는 두레박으로 우물물을 길어 올렸다. 아이고, 차가버라! 용두목도 얼어붙었는데 우물물이 얼지 않는 것은 어째서일까. 이 우물이 용두목보다 깊어서? 설마. 인혜는 빨래에 비누를 처대고, 맨발로 밟고, 물에 헹구고, 짜고, 빨래 방망이로 두드리고, 불어서 새빨간 발을 수건에 닦고 고무신을 신었다. 손바닥을 비비면서, 호-호-호- 숨으로 녹여보지만 손가락의 감각이 돌아오지 않는다.

미옥이 아버지 바지하고 저고리, 아버님 속바지, 어머님 속치마, 도련님 바지저고리, 내 저고리, 그래도 우리 미옥이 기저귀하고 옷이 제일 많다. 인혜는 바람에 뒤집어질 듯한 빨래를 집게로 집으면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아침 안개가 걷힌 하늘은 보드라운 파란 색이었다. 한없이 이어지는 파랑, 이 하늘 아래 나는 있다, 이 하늘 아래 아가씨는 없다, 아니면 귀신이 되어 같은 하늘 아래를 헤매고 있을까? 이렇게 생각하는 건, 소원 아가씨가 내 딸이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내 딸이, 미옥이가 그런 일을 당했다면, 안 되지. 그런 생각하면 안 된다, 생각만 하는 것도 안 된다.

두 달이 지났다. 두 달을 견뎠다. 지난 두 달 동안, 집안의 무거운 침묵을 깨뜨리지 않도록, 마루를 걸을 때도, 파를 도마 위에 올려놓고 썰 때도, 밤에 우는 아이를 달랠 때도, 침묵을 밀고 당기듯 천천히, 조용조용 조심해야 했다. 그런데도 세월은 흘러, 두 달이 지났다. 우리는 아가씨가 남기고 간 침묵을 이겨냈다. 하지만 어머님만은 갓난아기처럼 침묵을 꼭 껴안고 놓으려 하지 않는다. 오늘 아침에도 안방 앞을 지날 때, 흑흑거리며 우는 소리가 들렸다. 그래도 미옥이 백일 잔치 때는 어머님도 웃는 모습을 보여주겠지. 그 아이가 태어난 날이 10월 14일이니까, 백일은 1월 21일, 설 전이다. 일본사람들은 양력으로 설을 쇠니까, 내일이 섣달 그믐. 동네 여기저기에서 대문을 장식할 소나무와 금줄과 찰떡을 팔고 있다. 남자들도 여자들도 분주하게 오간다. 다들 익숙해졌는지 모르겠지만, 이 좁은 동네에 설이 두 번이나 찾아오다니, 아무래도 좀 이상하다.

수탉이 도도하게 볏을 휘두르며 인혜의 등뒤로 다가왔다. 닭은 놋대야에 부리를 처박았다가 고개를 위로 쭉 들어올리고는, 꼬곡하고 소리내며 물을 마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