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 하나. 3억원 하던 아파트가 어느 날 갑자기 6억원으로 올랐다. 그러다가 정부의 규제로 거품이 꺼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의외로 아파트값은 크게 떨어지지 않았다. 고작 1000만원이나 2000만원 정도 떨어지는 수준.
사례 둘. 3만원 하던 주식이 어느 날 갑자기 6만원으로 올랐다. 그러다가 거품이 꺼지기 시작했다. 주가는 다시 3만원으로 곤두박질쳤다. 게다가 투자심리가 얼어붙으면서 주가는 결국 원금에도 못 미치는 1만원까지 떨어졌다.
부동산과 주식. 한국 사회에서 손에 꼽을 수 있는 대표적인 재테크 수단이다. 그러나 두 재테크 수단의 가격 등락은 하늘과 땅만큼의 큰 차이가 있다.
어렵게 말하는 이들은 이를 ‘가격의 하방경직성 차이’라고 설명한다. 쉽게 말하면 부동산은 가격이 한 번 오르면 쉽게 떨어지지 않는 반면 주가는 가격 등락이 훨씬 심하다는 것.
둘 다 똑같이 수요와 공급에 의해 가격이 결정된다. 그런데 왜 이런 차이가 생길까.
▽실체가 있느냐〓아파트나 땅은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실체다. 반면 삼성전자나 SK텔레콤 같은 주식은 실체가 아니라 ‘기업의 능력’이라는 모호한 개념에 가깝다.
실체가 있고 없고는 가격을 결정하는 데 대단히 중요한 요소. 눈에 보이는 실체일수록 투자자가 마음을 놓기 마련이다. ‘서울 강남구 도곡동 삼성래미안 아파트’ 하면 투자자는 “아하, 그 아파트”라며 아파트의 생김새를 떠올린다. “교통 편하고 주거환경 좋고, 그렇다면 안심이지”라는 생각을 갖는다.
그러나 ‘삼성전자 주식’에서 바로 삼성전자라는 실체를 떠올리는 사람은 거의 없다. 반도체나 휴대전화 경기, 한국경제 전반 등 모호한 생각을 아무리 조합해도 그 회사의 미래에 대한 뚜렷한 확신을 얻기 어렵다.
실제 2001년 완공된 삼성래미안 아파트는 가격이 잘 떨어지지 않는 아파트로 이름을 날렸다. 35평형은 입주 첫 달 4억6000만원으로 가격이 형성됐지만 지난 연말에는 6억8500만원까지 올랐다. 정부가 부동산 대책 등 각종 규제를 발표해도 가격은 꾸준히 오르는 추세.
반대로 삼성전자는 외환위기 당시 3만원, 2001년에는 13만원대까지 폭락한 적이 있었고 지난해 한때 42만원을 넘는 급등세를 보인 적도 있다.
▽사용가치가 있느냐〓두 재테크 수단 모두 사고 파는 사람, 즉 수요와 공급에 의해 가격이 결정된다. 그런데 부동산은 주식과 달리 ‘사용 가치’라는 보너스가 있다.
3억원짜리 아파트를 팔려고 내놓았는데 사려는 사람이 없다고 해서 “3억원짜리를 1억원에 팔 테니 제발 사가세요”라고 호소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3억원에 안 팔리면 그냥 그 아파트에 들어가 살아버린다. 이러니 가격이 잘 떨어지지 않는다.
주식은 팔려고 내놓았을 때 사려는 사람이 없으면 가격을 내려 싸게 파는 수밖에 없다. 주식 자체는 들고 있어봐야 쓸모가 거의 없기 때문.
▽미래가치를 할인했느냐〓부동산에는 가격 폭락이란 절대 없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실체나 사용가치보다 ‘미래에 대한 기대’에 의해 가격이 형성됐을 때에는 가격 폭락이 생긴다. 대표적인 것이 재건축 아파트. 재건축이 될 것이라는 기대에 의해 높아진 가격은 재건축이 불투명해지면 급락한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는 재건축 여부에 따라 가격이 요동치는 대표적 사례. 이 아파트 31평형은 2001년 말 3억4500만원에서 지난해 3월 4억1500만원으로 석달 만에 7000만원이나 뛰었다. 하지만 주택시장 안정대책이 나온 직후인 4월에는 2000만원이 떨어진 3억9500만원으로 미끄러졌다. 9월에는 다시 4억8000만원까지 올랐지만 10월 재건축 안전진단에서 탈락하자 1주일 만에 2000만원이 빠졌다.
주식도 마찬가지. 벌어들이는 돈보다 ‘미래에 벌어들일 돈’에 기대를 걸고 오른 주가는 폭락하기 마련이다.
후불식 교통카드 매출이 크게 늘 것이라는 기대로 지난해 3월 주가가 2만8400원까지 올랐던 씨엔씨엔터프라이즈는 막상 실적이 기대만큼 나오지 않자 12월에는 3450원으로 폭락했다. 최고치의 8분의 1까지 떨어진 것.
▽부동산을 주식에 대입하기〓부동산을 참고로 하면 주식투자에서도 상대적으로 폭락의 위험을 줄일 수 있다. 힌트는 두 가지.
첫째, 실체나 사용가치가 있으면 폭락이 적다. 둘째, 미래에 대한 기대만으로 오른 주가는 폭락하기 쉽다.
막연한 기대보다 구체적으로 기업이 벌어들인 이익이나 자산, 즉 실체가 있는 주식에 투자하는 게 안전하다는 것.
사용가치가 있는 주식도 좋다. 대표적인 게 고배당주. 배당이 많은 주식은 사려는 사람이 없을 때 굳이 싼 가격에 팔지 않아도 된다.
주식을 갖고 있으면 매년 배당을 받을 수 있기 때문. 고배당 종목의 주가가 잘 떨어지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이다.
동부증권 장영수 기업분석팀장은 “안전한 주식투자를 원한다면 ‘부동산과 성격이 비슷한 주식’을 고르는 게 바람직하다”며 “자산이 풍부한 회사나 실제 이익을 꾸준히 내는 회사일수록 주가 폭락이 없다”고 말했다.
이완배기자 roryrery@donga.com
고기정기자 ko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