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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전야 바그다드 긴급 르포]권기태/제 1信

입력 | 2003-01-23 18:29:00


21일 요르단 수도 암만에서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로 가는 1100㎞ 황무지 속의 육로. 이 길을 따라 달리는 동안 하얀 먼지를 뒤집어 쓴 대형 유조차가 이라크 쪽에서 쉴 새 없이 넘어오고 있었다.

▼황무지에 가득한 전운

기자와 동행한 이라크 현지인(42)은 “이라크가 요르단에 보내는 석유 행렬로 연간 550만t에 달한다”며 “절반은 공짜로 나머지 절반은 염가로 요르단에 넘겨주고 있어 요르단의 후세인 전 국왕이나 압둘라 현 국왕이 이라크에 협조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최근 압둘라 국왕이 요르단을 서부 전진기지로 쓰자는 미국의 요구를 거부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 석유 행렬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고립에서 벗어나려는 이라크 외교의 현장을 도로 위에서 본 셈이다.

이라크 국경검문소의 외국인 대기실에 놓인 텔레비전에서는 이라크 해군 잠수병들이 바그다드 인근의 티그리스 강에서 수중전 훈련을 벌이는 광경이 방송되고 있었다. 군복을 입은 공보장교가 직접 마이크를 들고 현장에서 그 장면을 설명해줬다. 국경검문소의 이라크 관리는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저런 선무방송은 없었다”며 “이라크 사람들은 이제 (미국의 공격에 대해)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라크를 찾아오는 외국인들의 화두도 역시 ‘전쟁’인 듯했다. 국경검문소에서 만난 캐나다 ‘라 프레스’지의 기자 주니드 칸(41)은 “전쟁을 취재하러 간다”고 말했고, 반전단체 ‘광야의 목소리(VOW)’ 간사인 미국인 애나 바흐먼(38)은 “전쟁을 막으러 간다”고 말했다.

▼항전태세 들어간 바그다드

바그다드의 표정은 겉으론 평온했지만 전쟁에 대비하는 모습이 곳곳에서 감지됐다.

22일 저녁 이라크 국영 TV에서는 시내에서 벌어진 반미시위 장면을 연방 보여주고 있었다. 이라크 사람들이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 사진과 함께 ‘No war for oil(석유를 차지하기 위한 전쟁에 반대)’이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미국을 맹렬히 비난하고 있었다.

이미 이라크 국영 TV나 라디오, 신문 등에서는 ‘총성 없는 전쟁’이 불붙은 것처럼 보였다. ‘바그다드 옵서버’, ‘알-줌후리아’, ‘알-타우라’ 등 현지 신문의 1면은 대부분 후세인대통령의 사진과 연설을 비롯해 시리아 이집트 요르단 등 아랍의 형제국이 이라크를 지원하고 있다는 기사들로 채워지고 있었다. 특히 국영 바그다드TV와 이라크 방송은 매 시간 ‘후세인 찬가’를 방송했다.

12년 전 걸프전 당시 미군의 공격을 경험했던 시민들 가운데는 단수에 대비해 벌써부터 우물을 파고 있는 사람도 있다고 관광업체 부사장 아흐메드가 말했다. 일부에서는 양초나 등잔을 준비하는 시민들도 있다고 했다. 시내에서 만난 사람들은 한결같이 미국의 공격이 실패할 것이라며 맞서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또 하나 눈여겨볼 만한 현상은 총을 사들이는 바그다드인들이 많아졌다는 점이다. 사둔 거리의 한 총포상은 “지난해 초보다 1월에 두 배가량 많이 팔았다”며 “1000달러 하는 신형부터 200달러 하는 구형까지 60정 정도 팔았다”고 말했다. 그는 대부분 권총을 사간다고 말했다. 바그다드 시내 허가받은 총포상은 40군데가 있다.

이라크 공보부의 한 관리는 “7년 의무복무에서 퇴역한 30, 40대 장년들이 지난해 말부터 매달 수천명씩 지역 민병대에 들어가 실탄 사격 연습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개전(開戰)은 ‘미디어 전장’에서

이라크 공보부는 알 만수르 호텔 부근에 외국 기자를 위한 ‘프레스센터’를 개설했는데 미국 CNN과 영국 BBC 방송의 일부 기자들은 지난해 11월 국외로 추방됐다. 후세인 대통령의 ‘전면 사면 단행’에 대한 일부 시민들의 항의 시위를 편파 보도했다는 게 그 이유였다. 서방 언론에 대한 일종의 경고인 셈이다.

이들 방송의 웹사이트를 비롯해 뉴욕 타임스, 더 타임스 등 영미권 미디어의 웹사이트는 바그다드에서 접속할 수 없었다. 공보부가 외부와의 접촉을 막기 위해 차단해버렸기 때문이다. ‘다음’ 등 한국의 일부 웹사이트도 접속이 안 됐다. 이라크 정부는 또 지난해 14개의 케이블 채널을 민간에 허용했는데, 대부분 오락 스포츠 채널이고 뉴스 채널은 허용하지 않았다.

이라크 공보부 직원들은 외국 기자들이 이라크의 입장에 대해 공감하도록 만들기 위해 갖은 애를 쓰고 있었다. 전날 유엔 무기사찰단이 불시 사찰한 과학연구소나 기관들의 직원들을 매일 프레스센터로 데려와 이라크인의 시각에서 사찰단의 활동이 지나치다고 항변한다.

공보부측에서 “‘말자 알-아미리야’ 대피소는 반드시 방문해야 한다”고 적극 추천해 관리들과 함께 방문했다. 91년 2월 걸프전 당시 미군의 폭격으로 400명의 민간인이 폭살당한 곳이다. 폭탄이 뚫고 들어온 콘크리트 구멍과 잿더미가 된 시신이 유리관 속에 그대로 보존돼 있었다. 현장에는 ‘이라크가 살아갈 수 있게 해달라(Let Iraq live)’는 문구가 영어로 쓰여 있었다. 당시 각국 미디어가 민간인 살상을 그만둬야 한다고 맹비난해 결국 미국이 폭격을 중단하면서 종전이 됐다.

▼에이브러햄과 이브라힘의 전쟁

21일 만난 이라크 기자 ‘이브라힘’은 “오사마 빈 라덴이 이슬람 근본주의자라면 부시는 ‘기독교 근본주의자’이며 ‘석유 근본주의자’”라고 비난했다. 그는 “만일 부시가 이라크의 권력을 바꿀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할 것 같으냐”고 묻더니 “절대 아니다”고 덧붙였다.

‘이브라힘’은 이슬람권에서 널리 쓰이는 이름으로, 코란과 구약성경 모두가 선지자(先知者)로 기록하고 있는 ‘아브라함’에서 나온 말이라고 했다. 미국인의 이름 ‘에이브러햄’, 러시아인 이름 ‘아브라모비치’가 모두 ‘아브라함’에서 나왔다는 게 그의 설명. 그는 “미국 병사 ‘에이브러햄’이 이라크 병사 ‘이브라힘’을 죽이러 나서는 전쟁이 생겨야 하겠느냐”며 기자에게 되물었다.

권기태 기자 kk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