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의 출범을 앞두고 현 검찰총장의 잔여임기를 보장해 주어야 하는가가 문제가 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당선자의 기본 입장이 검찰총장의 임기를 보장해야 한다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지만, 거기에는 ‘정치적으로 특별한 문제가 없다면’, ‘국회에서 야당이 문제삼지 않는 한’ 등과 같은 단서가 붙어 있다. 이러한 단서는 경우에 따라서는 잔여임기를 보장하지 않겠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하듯이 새 정부 하에서의 검찰개혁을 위해 검찰총장이 자발적으로 사임해야 한다거나, 노 당선자에게 재신임을 물어야 한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모든 문제에 대한 답이 그렇듯이, 검찰총장이 사임해야 하는가의 문제에 대한 답도 기본원칙을 존중하면서 찾아가면 의외로 쉬워질 수 있다. 겉으로는 복잡하게 보이는 문제들의 실체를 보면, 그 문제 자체가 복잡하다기보다는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켜야 할 기본원칙들을 지키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에 복잡해지는 것이다.
우리나라 검찰조직은 외부에서는 독립성을 보장해 주고, 내부에서는 상명하복을 요구하는 검사동일체 원칙이라는 독특한 조직원리를 갖고 있다. 검사동일체 원칙이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한다는 지적이 있지만, 이는 정확한 얘기가 아니다. 개별 검사가 정치적 중립성을 지키도록 하는 것보다는 검찰조직 전체가 정치적 중립성을 지키도록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즉 검사동일체 원칙이 제 기능을 발휘한다면, 검찰에 부당한 영향을 미치고 싶어하는 외부의 권력자들 입장에서는 개별 검사가 아니라 검찰조직 전부를 움직여야 한다는 부담을 안게 된다.
검사동일체 원칙이라는 구조에서는 검찰총장이 얼마나 외부적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가에 따라 검찰이 정치적 중립성을 지킬 수 있는가가 결정된다고 할 수 있다. 검찰조직이 정치적 중립성을 지키도록 하기 위해서는 검찰 내부, 외부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 권력자들은 검찰을 자신의 입맛에 맞게 사용하려는 유혹에서 벗어나야 한다. 검찰의 구성원들은 외부의 부당한 영향으로부터 자신과 자신의 직무를 지켜야 한다. 국민은 권력자들과 검찰이 그러한 노력을 하는가에 대해 항상 감시해야 한다.
새로운 정치권력을 갖게 된 사람들이 검찰총장의 임기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은 그 자체가 검찰을 자신의 구미에 맞게 활용하려는 유혹에 첫걸음을 내디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검찰 입장에서 새 정부의 출범은 정치적 변화이지 조직의 직무나 구성원을 바꿔야 할 법적인 변화는 아니다. 검찰이 법률의 변화에 순응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정치적 변화에 순응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닐 뿐만 아니라 해서도 안 되는 일이다.
검찰총장은 대통령당선자나 야당, 여론으로부터 신임을 받을 위치에 있지 않다. 검찰총장은 법과 정의로부터 신임을 받아야 할 위치에 있다. 검찰총장은 자신의 임기 동안 대통령, 야당 나아가 여론으로부터의 신임을 잃어버리더라도 법과 정의의 신임을 받는 데 매진해야 한다. 이를 위해 가장 먼저 갖추어야 할 자세는 법이 부여한 자신의 임기를 소중히 여기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오영근 한양대 교수·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