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대작다운 무협영화 한 편이 관객과의 조우를 기다리고 있다. 장이머우(張藝謨) 감독의 신작 ‘영웅’이 바로 그것. 영화의 제목은 말 그대로 영화 속의 영웅적 주인공들을 지칭하는 것이겠지만 사실 이 영화의 각본을 쓰고 제작과 연출을 맡은 장이머우 감독이야말로 진정한 영웅이 아닐까. 그만큼 이 영화는 내가 본 무협영화들 가운데 스케일 및 스타일 면에서 단연 뛰어나다.
우선 이 영화에 등장하는 영웅들의 면모를 살펴보기로 하자. 무명(리롄제·李連杰)은 영화의 해설자이자 실질적인 주인공이다. 무명은 미천한 신분 탓에 이름 없는 무사에 불과했지만 출중한 무예로 진나라 백부장의 지위에까지 오른다. 조나라 사람인 파검(량자오웨이·梁朝偉)은 서예와 검술을 조화시켜 독특한 무공을 개발해낸 학자 스타일의 무사다. 역시 조나라 사람인 비설(장만위·張曼玉)은 빼어난 미모와 현란한 무예로 뭇 남성들을 사로잡는다. 파검과 연인 사이지만 결국 그녀를 움직이는 힘은 진시황인 영정(진도명)에 대한 불타는 복수심이다.
파검의 하녀인 여월(장쯔이·張子怡)은 무예는 뒤지지만 주인에 대한 충성심으로 똘똘 뭉친 당찬 여전사다. 창검술의 달인인 장천(견자단)은 진나라 최정예 호위부대 7인을 단숨에 제압하지만 결국 무명과 한판 승부를 벌여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이들 다섯 명의 무사들 가운데 과연 최고수는 누구인가?
만약 이 영화가 최고의 영웅을 가리는 이야기 구도로 흘렀다면 그저 영웅담을 다룬 대작 무협영화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중국 본토로 반환되기 이전 홍콩에서 양산되었던 무협영화의 장르와는 근본적으로 궤를 달리한다. 자본주의의 개인주의와 공산주의의 집단주의의 차이랄까?
일단 이 영화는 기원전 중국대륙에서 펼쳐진 격동의 춘추전국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영정이 난립해 있던 전국 7웅을 평정하고 마침내 통일제국을 수립한다는 역사적 사실에 바탕을 둔 이 영화는 중국 현대사를 이끌었던 당대의 영웅들을 연상시키고 있다. 그것이 마오쩌뚱인지 덩샤오핑인지 아니면 오늘날 최고지도자를 상징하는지는 또 다른 논란거리가 되겠지만 말이다.
장이머우 감독은 데뷔작 ‘붉은 수수밭’으로 베를린 영화제에서 금곰상을 받으며 세계무대에 등장했다. 같은 베이징영화학교 출신인 첸카이거(陳凱歌) 감독과 더불어 제5세대 선두주자로 꼽힌다. 그는 이후 첫 작품에서 호흡을 맞추었던 궁리(鞏利)를 주연으로 기용한 ‘국두’ ‘홍등’ ‘귀주 이야기’를 연이어 발표하면서 중국 봉건주의에 대한 가장 날카로운 비판자로 인정받았다.
그러던 그가 일대 변신을 꾀한 것은 1998년 ‘책상 서랍 속의 동화’에서부터다. 이 작품으로 장이머우 감독은 그해 칸영화제에서 ‘선전영화’라는 혹평을 받고 자진 철회했다가 베니스 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받는 어색한 풍경을 연출했던 것.
사실 영화 자체가 논쟁거리라기보다는 영화를 만든 감독의 변신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들이 많았던 셈인데, 논란의 초점은 감독이 이전에 중국 사회에 대해 겨누었던 비판의 칼날을 거두고 결국 중화주의로 회귀했다는 것이다. 농촌의 열악한 교육현실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나 비판적 개혁보다는 포용을 통한 개선을 강조하고 있는 듯 보였기 때문이다.
이를 입증이라도 하려는 듯 그는 이듬해 ‘집으로 가는 길’을 세상에 내놓았다. 데뷔 시절 궁리를 연상시키는 신예 장쯔이를 주연으로 발탁한 이 작품 역시 중국 시골의 구조적 모순보다는 시골처녀의 지고지순한 사랑 이야기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그의 보수회귀에 대한 우려의 소리가 높아진 것.
이렇게 볼 때 ‘영웅’의 주제의식은 이제 장이머우 감독의 지향점이 어디인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무척 흥미롭다 하겠다. 그는 주제의식(계몽의식)보다는 서정성을 강조한 전작 두 편의 우회로를 거쳐서 마침내 중화주의라는 더 큰 이념에 도달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외부자의 시각에서 장이머우 감독의 노선변경에 비판을 가하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시선을 내부로 돌린다면 사정은 달라진다. 장이머우 감독이 비판의 메스를 휘두를 당시의 공산주의 중국은 소련과 양대 산맥을 이루며 서방 자본주의를 견제하는 강력한 제국이었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 상황은 달라졌다. 구소련의 붕괴 이후 미국의 패권주의로 힘의 균형이 무너진 상태다. 체제 내 민주화보다는 대(對)체제 민족이념이 훨씬 절실해진 상황인 것이다.
물론 감독도 자신의 영화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정치적 메시지가 미칠 역효과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의도적으로 스케일과 스타일에 치중한다. 지나치게 도식적으로 여겨질 만큼 색채를 통한 스타일에 집착하는가 하면, 컴퓨터그래픽을 통한 연출에서도 여느 할리우드 액션영화 못지않은 스케일을 자랑한다. 서양에 ‘반지의 제왕’이 있다면, 동양에는 ‘영웅’이 있다고 자부할 만하다.
어쨌든 장르 자체에만 한정하여 본다면 ‘영웅’은 무협영화의 역사를 수놓은 걸작들의 장점만을 추려놓은 종합선물세트라 하겠다.
김시무 영화평론가kimseemoo@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