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봉씨의 거실 한 면을 가득히 채운 책은 그의 장서 중 일부분일 뿐이다. 곧 그는 ‘넘치는’ 책을 쌓아둔 고향 화천으로 거처를 옮긴다.권주훈기자
◇전작주의자의 꿈/조희봉 지음/270쪽 9000원 함께읽는책
어려서부터 책으로 가득한 집에서 살았다. 대학생 때는 세상에 주눅들어 마음대로 책을 읽을 수 없는 것이 불행했고, 그 뒤 책과 관련 없는 회사에 다녀서 불행했다. ‘과녁을 맞히지 못한 화살 같은 생을 살았다’.
10년 넘도록 헌책방을 돌며 책을 모아온 서른 세 살의 남자. 그가 드디어 자신의 책‘전작주의자의 꿈’(함께읽는책)을 내놓았다. ‘어느 헌책수집가의 세상 건너는 법’ 이라는 부제의 책에서 그는 헌책방 순례의 뒷이야기와 책 관리의 노하우, 바람직한 책 수집의 이상(理想)을 낱낱이 펼쳐놓는다.
겨울 아침, 지하철 마장역 부근 그의 집을 찾았다. 벽돌과 합판으로 만든 서가가 거실 한 면을 메우고 있었다.
#세제로 닦고, 비닐로 싸고….
―책이 정말 많군요. 거의 새것 같습니다.
“찌든 때를 벗기는 주방용 세제로 책을 닦는다는 아이디어를 후배에게서 얻었습니다. 스프레이를 뿌리고 마른 수건으로 닦으면 기적같이 때가 벗겨지죠.”
―모두 비닐로 싸셨군요. 요즘 보기 드문데….
“책이란 쉽게 버리는 물건이 아니죠. 문구점에서 파는 ‘아스테이지’로 포장을 하면 수축해 책에 딱 맞게 됩니다. 이렇게 손질을 하며 책과의 대화를 시작합니다.”
#작가의 모든 것과 씨름한다
―기사 첫머리에 사전식 정리를 했습니다만 ‘전작주의’가 사전에 나옵니까?
“제가 만든 말입니다. ‘작품은 작가 내면세계 전체의 판도 속에서 의미와 문제를 드러낸다’는 김화영 교수의 말에서 단서를 얻었어요.”
그는 ‘쉽게 말해 한 작가의 생애 및 모든 작품을 붙잡고 씨름하겠다는 자세가 전작주의’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모든 저자를 대상으로 삼을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첫 타깃으로 삼은 작가는 이윤기입니다. 소설 ‘하늘의 문’을 읽고 반해 번역서까지 찾아다니게 됐죠.”
―타깃이 된 분도 그 사실을 알고 있나요?
“네…. 재작년 결혼을 앞두고, 일면식도 없던 이윤기 선생에게 주례를 부탁드렸죠.”
‘전작주의’의 이상을 담은 장문의 편지를 90권의 ‘이윤기책’과 찍은 사진과 함께 보냈다. 작가는 결국 결혼식이 열렸던 고향(강원 화천군)에서 두고두고 화젯거리가 된 주례사를 했다.
그의 다음 타깃은 작가 안정효, 비평가 김우창 등. 사회와 인간을 대하는 ‘진정성’의 문제를 그는 중시한다.
#‘헌책방의 법칙’ 은 ‘헌책방의 재미’
“헌책방 순례자들이 겪는 징크스랄까, 법칙들이 있습니다. 헌책의 ‘희소성’ 때문이죠.”
△열심히 찾을 때는 안보이던 책도, 찾아낸 뒤에는 차일 듯 많다 △망설이다 안 산 책은 마음먹고 찾아가면 없다….
“이 사소한 법칙을 따라가다 보면 헌책방 다니는 재미에서 헤어나기 어려워집니다.”
헌책방 ‘메카’인 청계천, 용산 등의 상세 정보, 인터넷 헌책 동호회 소개도 책 속에 빼놓지 않았다.
#그 밖에…
그는 최근 6년간 다니던 직장에 사표를 냈다. 책 4000여권을 쌓아둔 고향 부모님댁 가까이로 이사할 예정.
―헌책방에서 자신의 책을 만나면 어떤 기분이 들까요?
그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걱정이에요. 제 방의 보물들도 헌책방에서 건져왔지만 제 책을 거기서 발견한다는 상상은 왠지 꺼림칙하네요.”
▼전작주의(全作主義)란…▼
한 작가의 ‘모든’ 작품을 통해 일관된 흐름과 징후를 짚어내면서, 그 작가와 작품세계가 당대적(當代的)으로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찾아내고자 하는 시선.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