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연기는 땀방울에서 나온다.' 요즘 SK나이츠농구팀과 여자프로농구 전속 치어리더로 활약중인 '드림팀'단원들이 서울 당산동 연습실에서 새로운 율동을 신나게 연습하고 있다. 안철민기자
화려한 의상과 화끈한 동작으로 흥을 돋구는 치어리더. 그들은 더 이상 ‘경기장의 감초’가 아니다. 치어리더가 없는 경기장을 한 번 상상해보라. 심심하고 삭막하기 짝이 없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그들은 이제 경기장에서 빼놓을 수 없는 당당한 ‘주역’이다.
국내 30여 치어리더 이벤트업체 가운데서도 가장 바쁜 에치에스컴(www.hsevent.com) 치어리더 ‘드림팀’을 만났다. 프로농구 시즌인 요즘은 SK 나이츠와 여자프로농구(WKBL) 전속. 올 봄 야구시즌엔 SK 와이번스 전속자리를 예약해 놓았다.
▼2시간에 15곡 소화 ‘파김치’
지난 21일 오후 5시 서울 당산동 연습실. 파김치가 된 치어리더들이 하나 둘씩 들어온다. 여자프로농구 경기장에서 한바탕 공연을 벌이고 들어오는 길. 오전 10시에 모여 연습을 한 뒤 경기장에서 2시간 가까이 15곡 이상 소화했으니 몸은 천근만근이다.
아이디어 회의에 슬쩍 끼어들었다.
“매일 이렇게 바쁜가요?” “말도 마세요. 1월 들어 하루도 못 쉬었어요. 그래도 서울경기 때는 나은 편이죠. 지방경기가 있는 날은 아침 7시에 모여 갔다 오면 자정을 넘기기 일쑤예요.” 주간일정표(19일∼25일)를 살펴봤다. 프로농구 올스타전이 열리는 기간이어서 한가한 편이라고 하지만 남녀 프로농구 4번, 여기에올스타전 공연이 두 번이나 있다. 지난해 올스타전 치어리더 경연대회에서 우승한 팀이라 더 바쁘다.
“그렇게 바쁘게 뛰면 수입이 꽤나 좋겠네요.” “학생 아르바이트로 보면 괜찮고 전문직업으로 따지면 아쉬운 게 많죠” “구체적으로 얼마나 벌어요?” “….”
대답을 안 하니까 더 궁금하다. 과연 얼마나 벌까. 회사 간부에게 물어보니 기본급 80만원에 행사 출연 때마다 각종 수당이 붙는단다. 열심히 하면 월 120만원∼130만원.
“학생 신분으로 이 정도면 짭짤한 것 아닌가요?” “아 참, 뭘 몰라서 그러는 거에요, 스타킹을 하루에 두 개 갈아 신을 때도 있는데 싼 것이라고 해야 한 켤레에 2000원 하죠, 거기에 속눈썹 붙이려면 3000원이죠, 또 무대화장해야 하는데 화장품 값도 만만치 않죠….”
아이디어회의 중에 돌발상황이 벌어졌다. “오늘이 몇 일이지?”라고 날짜를 맞춰보다가 “앗! 내 생일이네”하는 외마디 소리에 다들 놀란 것. 바로 팀원 최은경의 생일날. 생일도 까먹을 만큼 바쁘다는 것이 증명된 셈.
다음 공연의 아이디어 회의를 하고 있는 ‘드림팀’ 치어리더 단원들. 왼쪽부터 박보현 이민숙 최은경 문혜정 고지선 최경임 강은선. 안철민기자
“생일 파티하러 가자!” 골치아픈 아이디어회의가 중단되고 우르르 인근 식당으로 몰려갔다. 이날 메뉴는 삼겹살.
“운동을 많이 하니 먹성도 좋겠군요.” “회식기회가 생기면 토할 때까지 먹는게 우리 철칙이지요, 호호호.” “앉은 자리에서 밥 두 공기는 기본이예요. 여기에 숭늉 마시고 식혜 먹고, 박하사탕으로 마무리해야 끝납니다.” 이날 7명의 치어리더가 먹어치운 삼겹살은 15인분.
몇 년전 일화 한토막. 농구팀을 새로 인수한 회사가 모처럼 한 턱을 냈다. 돼지갈비를 구웠는데 문제는 치어리더 쪽 식사값이 선수 쪽보다 더 나온 것. 선수들이 모두 나간 뒤에도 이들은 한참 먹고야 끝났다니 회사측 계산 담당자가 놀랄 수 밖에….
“그렇게 먹으면 몸매 유지가 어렵지 않나요?” “체질인가봐요. 먹는 것만큼 살이 찌지 않거든요.” 그러자 최고참 강은선의 한 마디. “말라도 배는 나왔어요. 워낙 운동량이 많으니까 항상 배가 고파요.” “술도 많이 마시나요?” “스케줄이 바쁘다 보니 자주는 못 해요. 술 마시고 뛰면 얼마나 힘드는데…”
▼7명이 삼겹살 15인분 ‘꿀꺽’
그래도 ‘필이 꽂히면’ 밤새 마시기도 한단다. “야구시즌이었는데 전날 먹은 술이 경기 시작할 때까지 안깼어요. 무대에 올라 펄쩍펄쩍 뛰니 얼마나 속이 울렁거리던지…. 그래서 틈만 나면 화장실로 달려갔는데 관중 한 분이 눈치를 채고 숙취음료를 한 병 건네주시더라구요. 민망해서 혼났어요.”
“관중들이 짓궂은 행동을 하진 않나요?” “예전엔 많았지만 요즘은 거의 없어요. 가끔 이상한 눈빛으로 보는 사람들은 있지만….”
최근 치어리더 팬클럽이 늘어났다. 팀원 중 6명이 팬클럽 카페를 가지고 있을 정도. 고지선은 1000여명의 ‘누나부대’를 거느리고 있다는 것.
“매일 뛰다보면 다치기도 하겠네요.” “늘씬하게 보이려고 굽이 10cm가 넘는 구두를 신다 보니 발목 접질리는 것은 예사죠, 오늘도 아침에 한명이 출근하다 발목을 다치는 바람에 7명만 코트에 나섰어요.”
치어리더가 된 사연도 갖가지다. 대학시절 응원동아리에서 활동한 경우가 가장 많지만 현대무용을 전공한 ‘정통파’도 있다. 또 무작정 아르바이트 자리를 찾다가 치어리더에 도전한 사람도 있고 친구 따라 오디션 보러왔다가, 혹은 길거리에서 헌팅을 당한 경우도 있다. 한 가지 공통점은 ‘끼’가 있어야 한다는 것.
“아무리 늘씬하고 춤을 잘 춰도 ‘끼’가 없으면 치어리더 못해요. 배꼽이 다 드러나는 옷을입고 관중 앞에 서서 흔들어대려면 배짱이 있어야 하거든요. 그런 면에서 우리 모두 진정한 프로가 아닐까요?”
전 창기자 je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