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영 경제부 차장
웃음도 나오지 않는 ‘썰렁 개그’였다. 뒷맛은 씁쓸했다.
15년 동안 국책사업으로 추진해온 경인운하 건설계획을 백지화하고 다시 하루 만에 이를 번복한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행태는 한마디로 코미디였다.
인수위 내부에서 어떤 논의가 있었는지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하지만 이 썰렁 개그를 잘 들여다보면 전환기 권력을 장악한 측이 참으로 경계해야 할 ‘독선’과 ‘아마추어리즘’의 냄새가 강하게 풍긴다.
경인운하 백지화 방침이 처음 알려진 24일 오전 담당 부처인 건설교통부 주무국장과 건교부에서 인수위로 파견 나온 간부는 “금시초문”, “전혀 협의한 바 없는데…”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바로 그 시간 경인운하 백지화 운동을 벌여온 시민단체는 백지화 방침을 환영하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이미 준비해 두고 있었다.
여기서 경인운하 건설 백지화가 옳으냐 그르냐는 전혀 문제의 핵심이 아니다.
도대체 어떻게 국책사업에 대한 인수위의 결정이 주무 부처를 완전히 배제한 채 결정될 수 있었는지, 또 어떻게 그런 결정을 정부보다 시민단체가 먼저 알았는지도 핵심에서 비켜서 있다.
이번 해프닝의 본질은 인수위의 상당수 위원들이 정부정책을 ‘이기고 지는 게임’의 수단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관료들을 게임에서의 ‘적’으로 간주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게임에서 이기기 위해 적을 제압해야 한다는 독선의 논리이다. 이 독선은 정책의 현실적합성을 고려하지 않는 아마추어리즘에 의해 추진력을 얻는다.
관료 출신인 김진표 인수위 부위원장이 인수위 내에서 왕따를 당하는 것도 인수위원들의 이런 독선을 반영한다. 한 인수위원은 재벌개혁에 대해 자신과 다른 발언을 한 김 부위원장을 비난하면서 “잘라야 한다”고 막말을 하기까지 했다.
솔직히 필자는 김 부위원장과 해당 인수위원 중 누가 더 개혁적인지 판단하기 어렵다.
정책에는 반드시 긍정적 효과와 부정적 효과가 함께 나타나며, 그래서 찬반이 있기 마련이다. 수없이 많은 갈래의 이해관계 충돌을 고려하면서 풀어야 하는 고차원 방정식이다. 한 가지 목표만을 위해 밀고 나가는 시민운동과는 다르다.
따라서 국가를 운영하는 일이 사회운동보다 더 가치가 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차원이 다른 일인 것만은 분명하다.
경인운하 건에 대해 한 정부 관계자는 “인수위원들이 조직생활 경험이 없는 재야인사, 정당인사, 교수들로 구성돼 정책운영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발생한 해프닝으로 이해해 달라”고 말했다.
이렇게 말하는 관료들의 생각을 경청하고 포용하지 못하는 한 인수위는 아무 일도 제대로 할 수 없다.
인수위는 독선을 버려야 한다. 정책 집행과정의 손발이 되어야 할 관료사회를 적으로 돌리고서는 어떤 정부도 성공할 수 없다.
순수한 열정으로 뭉친 개혁집단이 실패하는 사례를 역사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국가 운영에는 ‘프로페셔널리즘’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경제부 차장 young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