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테네 아크로폴리스의 파르테논 신전(오른쪽)과 에레크테이온(왼쪽). 2004년 아테네 올림픽을 앞두고 새 단장을 하느라 분주하다. 사진제공 노성두씨
아테네에 만발한 봄이여.
그대는 처녀의 젖가슴에 피어난 수줍은 꽃송이.
지상의 영광을 마주보기 수줍어,
아침해도 낯을 붉혔다. (횔덜린의 ‘히페리온’)
여기서 처녀는 아테나 파르테노스 여신, 젖가슴은 아크로폴리스를 가리킨다. 아침 해가 붉은 게 순전히 봉긋하게 솟은 아크로폴리스 언덕 탓이라니, 시인 횔덜린의 입심도 장난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아크로폴리스는 누구나 아는 그리스 최대의 성지다. ‘아티카의 왕관’으로 일컫는 이곳에 오르면 고전기 그리스의 황금빛 향기가 가득하다.
▼연재물 목록▼
- 디오니소스 극장과 비극시인
- 케라메이코스와 케라모스
- 엘레우시스와 플라톤
- 올림피아와 파우사니아스
- 델피와 호메로스
아크로폴리스가 처음부터 신들의 거처는 아니었다. 미케네 시대에는 왕족들 호화궁성과 귀족들 저택이 거들먹거리던 난공불락의 바위 성채였다. 그러다가 기원전 8∼7세기에 아테나 여신이 도시의 수호신 자리를 차지하면서 신전들이 하나 둘 들어서기 시작한다. 기원전 6세기 참주 시대에 이르러서는 무려 아홉 채나 되는 신전과 성역이 빼곡히 메웠다. 그러나 480∼479년 페르시아와 마지막 전쟁을 치르고 귀환한 아테네 시민들은 놀라운 광경에 입을 다물고 만다. 눈부신 대리석 도시가 시커먼 잿더미로 변해 있었던 것이다. 포세이돈의 샘물은 말라붙고, 아테나 여신이 선물한 올리브 나무도 뿌리까지 눌어붙어 있었다. 이런 폐허의 풍경은 그로부터 한 세대 뒤, 페리클레스가 아크로폴리스 재건의 삽을 뜨기 전까지 계속된다.
고전기에 새로 단장한 아크로폴리스의 얼굴마담 셋을 꼽으라면, 파르테논 신전, 에레크테이온 그리고 현문 프로필레이아다. 처녀신 아테나를 모신 파르테논 신전이 영광스러운 위엄을 드러낸다면, 창건시조 에릭토니오스를 기념한 에레크테이온은 우아한 기품이 넘친다. 또 신들의 도시로 들어가는 입구 프로필레이아는 장중하고 화려한 축제 분위기에 걸맞다.
파르테논 신전 동쪽 박공부의 세여신 헤스티아, 디오네,아프로디테. 사진제공 노성두씨
페리클레스는 아크로폴리스를 새로 짓고 나서 아테네 시민들에게는 잘 했다고 칭찬을 받았지만, 아티카 동맹기금을 끌어쓰는 바람에 주변의 시선들이 곱지 않았던 모양이다. 공공기금을 제 호주머니 돈처럼 마구 꺼내 쓰면 어쩌자는 거냐고 질책이 쏟아지자 이렇게 둘러댔다고 한다. “어차피 방위 문제야 아테네 상비군이 책임질 테고, 노는 실업자들 일자리 창출해서 경기 부양하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게 아니냐.”
파르테논과 프로필레이아에 들어간 대리석은 무려 2만2000t. 덕분에 대리석 산지로 유명한 인근의 펜텔리콘 산이 거덜났다. 높이 156m의 아크로폴리스 벼랑까지 집채만 한 돌덩어리를 밀고 당기면서 끌어올리느라 일꾼들 힘깨나 들었을 것이다. 건축 총감독은 피디아스가 맡았다. 페리클레스와 어릴 적 친구로 약관 서른에 불과했지만 뚝심과 실력을 고루 갖춘 재주꾼이었다. 고전기 예술의 기적을 불과 십여 년 만에 뚝딱 해치운 데다, 초고속 날림공사 하나를 가지고 그후 수천년 동안 착실하게 관광수입을 올리고 있으니까.
그런데 아홉 채나 되었다는 옛 신전들은 다 어디로 간 걸까? 그건 파르테논 신전을 짓느라 아크로폴리스의 동남쪽으로 터를 넓힐 때 지반개량 보강재로 다 채워 넣었다. 남는 건 또 바깥 성벽의 축성재료로 들어갔다. 이를테면 폐 건축자재를 버리지 않고 알뜰하게 재활용한 것이다. 아테네인들의 재활용 정신은 고고학자들에게 더 없이 고마운 행운이었다. 그을리고 으깨지고 토막이 나긴 했지만, 흙더미 아래에서 파낸 까마득한 옛 신전의 흔적들은 신전 건축사와 아크로폴리스의 사라진 역사를 밝혀주는 더없이 소중한 보물들이었으니까.
미술평론가 nohshin@kornet.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