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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형극회 조용석씨 가족 "우리집은 인형의집"

입력 | 2003-01-26 18:58:00

2대째 가족이 인형극에 종사하는 ‘인형극 가족’. 왼쪽부터 딸 조윤진씨, 아버지 조용석씨, 그리고 어머니 여영숙씨. 언젠가인형박물관을세워수만개에이르는손때묻은인형들의‘집’을만들어주는게이들가족의꿈이다. 권주훈기자 kjh@donga.com


요즘 점심 무렵이면 덕수궁 돌담길은 병아리처럼 삐약대는 꼬마들로 줄을 잇는다. 정동극장에서 공연중인 인형극 ‘브루노의 그림일기’를 보러 엄마손을 잡고 온 아이들이다.

16일 시작한 이 공연은 주말마다 전좌석이 모두 매진되고, 평균 객석점유율이 90%에 이를 만큼 성황을 이루고 있다.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인형극단인 현대인형극회 조윤진 실장(27)의 연출 데뷔작. ‘브루노’ 인형도 자신이 직접 연기한다.

윤진씨의 아버지는 조용석 현대인형극회 대표(56). 이번 작품을 계기로 그동안 연출을 맡아온 조 대표는 2선으로 물러나고 앞으로 현대인형극회의 모든 인형극을 윤진씨가 연출한다. 이로써 41년된 현대인형극회의 ‘세대교체’와 동시에 2대에 걸친 ‘인형극 집안’이 탄생한 셈.

“제 딸이지만 인형극에 소질이 있어요. 국문학도를 꿈꾸다 미대를 가서 그런지 문학적 소양과 예술적인 안목도 고루 갖췄고….”

“연기를 하면서 ‘큐(사인)’를 주는 게 제일 어려웠어요. 대표님이 뒤에서 많이 도와주셨죠.”

윤진씨는 아버지에 대해 말할 때 꼭 ‘대표님’이라고 했다. “집에서도 그렇게 부르냐”고 하자, “어머니는 아버지를 ‘감독님’이라고 하시는 걸요” 하며 웃었다.

어머니는 여영숙 현대인형극회 인형아카데미 원장(50). 여 원장은 조 대표와 현대인형극회에서 만나 결혼했다. 여 원장은 30대 중반 이후 세대들이 즐겨봤던 조 대표의 TV 인형극 ‘부리부리박사’에서 부리부리박사를 연기했던 인형극 배우다. 아버지는 줄인형, 어미니는 막대인형과 탈인형, 딸은 손인형이 전문.

인형극 연출가의 눈에 비친 요즘 아이 관객들의 수준은 ‘장난이 아니다’. ‘브루노의 그림일기’에는 알파벳송이 나온다. 윤진씨(브루노)가 ‘제트(Z)’라고 발음하자, 객석에서 아이들은 ‘틀렸어! 제트가 아니라 지라고 발음해야 돼!’ 하고 소리쳤다. 물론 다음 날 공연부터는 ‘지’로 바꿨다.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 그는 주로 애니메이션이나 캐릭터, 일러스트 등 이미지를 많이 보고 감각을 키운다. 하지만 그의 궁극적인 목표는 어른들을 위한 인형극이다. 첫 시도로 2000년부터 어른을 위한 인형극인 ‘줄인형 콘서트’를 기획해 꾸준히 무대에 올리고 있다.

‘현대인형극회’는 1962년 조 대표의 형인 고 조용수씨가 설립했다. 지금은 막내인 조 대표의 가족만 남았지만, 한때는 88올림픽 ‘호돌이’ 마스코트를 손으로 만든 ‘제작부장’ 누나를 비롯해 조 대표의 6남매와 조카 등 9명의 집안 식구들이 함께 일하기도 했다.

조 대표는 “딸이 다음달 시집가지만 이렇게 같은 길을 걷고 있으니 매일 얼굴을 볼 수 있어 좋다”며 “딸이 오래오래 인형극을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모범생 강아지 ‘브루노’가 말썽꾸러기 생쥐 ‘크랙’에 대한 오해를 풀고 친구가 되는 이야기를 그렸다. 5∼8세 아동에게 보여줄만 하다. 30일까지. 1만2000, 1만5000원. 02-751-1500

강수진기자 sjk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