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본 제1조절지(아래)는 연못과 산책로 등을 만들어 평소에는 도시공원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제2조절지는 주택단지 부근에 있고 농구장 등 각종 체육시설을 갖추고 있다.-사진제공 대한주택공사
《2001년 7월 15일 서울에는 오전 2시경부터 한 시간 동안 99.5㎜의 비가 양동이로 퍼붓듯 내렸다. 이 결과 광화문 등 도심의 많은 빌딩들이 침수 피해를 보는 흔치 않은 ‘사건’이 발생했다. 시간당 30㎜ 이상의 비가 오면 일반적으로 집중호우라고 불린다. 그러나 도시 개발과 도로 포장의 정도 등에 따라 집중호우로 정의할 수 있는 강우량은 달라진다. 서울의 경우 현재 문제없이 처리할 수 있는 강우량은 시간당 20㎜에 불과하다. 최근에는 비가 내리는 패턴도 종잡을 수 없다. 말 그대로 게릴라성 집중호우가 언제, 어느 곳에 출몰할지 예측하기가 어려울 정도다. 집중호우에 따른 홍수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의미다.》
따라서 언제, 어느 곳에 집중호우가 있더라도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홍수와 더불어 사는 지혜를 터득하는 게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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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지의 댐’ 유수지를 만들자=지금은 과거처럼 하천 주변에 제방을 높게 쌓는 경우가 사라지고 있다. 퇴적물로 하천 바닥이 주변보다 높은데 제방을 쌓으면 피해만 키우기 때문이다.
경기 군포시 산본신도시의 산본천에는 ‘조절지’라고 불리는 유수지 2곳이 있다. 1990년대 중반 산본택지지구를 개발하면서 산본천의 유량이 크게 늘어나면서 산본천과 안양천이 만나는 하류 쪽의 구시가지가 침수될 위험에 처했다. 예상되는 최대 유량은 230t이지만 산본천이 소화할 수 있는 용량은 200t에 불과했다.
이에 따라 주택공사는 빗물 30t을 담아둘 유수지를 만들었다. 유수지는 평소에는 공원과 체육시설로 사용되지만 비가 많이 올 때는 저수지로 바뀐다.
일본 사이타마(埼玉)현 도네(利根)강 상류에는 일본 최대의 와타라세(渡良瀨) 유수지가 있다. 도네강으로 흘러드는 와타라세강과 오모이(思)강 등 지천들의 수위가 올라갈 경우 넘치는 물을 차례로 잡아 가두는 역할을 한다. 모두 3개의 저수지로 구성된 와타라세 유수지의 총 저수용량은 1억7600여만t에 이른다.
일본 미에(三重)현의 소규모 하천인 기즈(木津)강 유역에도 900만t의 물을 담을 수 있는 우에노(上野) 유수지가 있다. 가와카미 아키라(川上聰) 미에환경현민회의 기획위원은 “어느 정도의 침수를 허용해 홍수와 더불어 사는 방식을 주민들이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지하에 가둬라=자연 상태의 하천 유역에는 비가 많이 와도 수위가 금방 불어나지 않는다. 지하로 스며들고 나무들이 흡수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표면의 대부분이 포장된 도시에서는 비가 오면 유량이 금방 불어나 침수 피해를 보기 십상이다.
일본 오사카(大阪)시와 미국 시카고시는 물을 가두어 두는 지하 터널을 만들어 도심 침수를 막고 있다. 오사카시 동남부 지하 40m에는 지름 9.8m의 거대한 콘크리트 터널이 뚫려 있다. 오사카시청 와라타 히로유키(藁田博行) 방재계장은 이 터널을 ‘지하 강’이라고 불렀다.
오사카시 동남쪽은 지대가 낮은 상습 침수 피해 지역. 히라노(平野)강 폭을 넓히면 되지만 유역에 주택가가 있어 보상문제가 걸림돌이 됐다. 오사카시는 1981년 지하 터널을 파기 시작해 2002년 초 4.2㎞ 길이의 지하 강을 완공했다.
와라타 계장은 “지하 강의 저수용량이 36만t이 돼 시간당 62㎜의 강우량에도 침수 피해를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시카고시에도 지름 4∼11m의 지하터널이 210㎞나 뻗어 있다. 하수처리용량을 넘는 비가 내리면 빗물이 저절로 이 터널로 흘러 들어간다. 저수용량은 1억5000여만t. 지하터널은 오염물질도 함께 가둬 상수원인 미시간호의 수질 보호에도 한몫하고 있다.
오사카·사이타마·산본=이 진기자 leej@donga.com
▼日'족집게' 홍수예보▼
지난해 12월 말 일본 사이타마(埼玉)현 와타라세(渡良瀨) 유수지 한가운데에서 도네강 상류공사사무소 하라 마사간(原正寬) 계장이 휴대전화의 버튼을 꾹꾹 눌렀다. 그러자 휴대전화 화면에 유수지의 수위와 엽록소 농도 등의 정보가 차례로 떴다.
하라 계장은 “한 시간 단위로 와타라세 유수지의 수위와 수질 상황이 휴대전화를 통해 들어오고 있다”며 “이 정보를 그때그때 점검해 상류의 8개 댐과 긴밀하게 연락하면서 대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본에서는 1985년 재단법인 형태의 하천정보센터가 설립돼 각 하천과 그 유역의 정보를 신속하고 정확하게 제공하고 있다. 하천정보센터는 일본 전역을 바둑판처럼 나누고 주요 지점에 설치된 레이더, 우량계 등을 통해 필요한 정보를 입수한다.
민간통신회사는 하천정보센터에서 받은 이 정보를 가공해 일반인에게도 휴대전화로 보내준다. 제공되는 콘텐츠는 강우량에서 댐의 방류량, 태풍 상황 등 50여 개에 이른다. 아이모드(i-mode)로 불리는 이 서비스의 한 달 기본이용료는 300엔(약 3000원)선이다.
수자원연구소 채효석(蔡孝錫) 선임연구원은 “일본에서는 아이모드 서비스를 홍수나 산사태 등 재난 피해를 최소화하는 데뿐만 아니라 레크리에이션 등 야외활동을 준비하는 데도 많이 활용한다”고 말했다.
한국에서는 무선정보통신 기술은 일본에 못지않지만 레이더 등 인프라가 부족해 아이모드 서비스는 아직 제공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1989년 지리산 집중호우를 계기로 각 지방자치단체가 전국 산간의 계곡 등 72개 지구에 ‘자동 우량 경보 시설’을 설치해 가동하고 있다.자동 우량 경보 시설은 계곡 중상류의 강우량을 자동 관측해 10분당 4㎜가 넘으면 하류에 자동으로 경보를 발령한다.
사이타마〓이 진기자 leej@donga.com
▼전문가 기고 "홍수조절 다목적댐 늘려나가야"▼
해마다 여름에는 물난리를, 봄가을에는 물 부족과 수질을 걱정해야 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하지만 용수 확보와 홍수 및 가뭄 조절을 위해 지속적인 수자원 개발이 필요하다는 주장과 자연환경 보전을 위해 더 이상의 댐 개발은 곤란하다는 주장은 여전히 평행선을 달린다. 양자간 갈등을 풀고 ‘사람’과 ‘자연’이 균형을 이루는 공존 공생관계를 정립해 나갈 방안은 없는가.
지난해 여름 태풍 루사는 재산피해 5조1000억원, 인명피해 246명이라는 엄청난 상처를 남겼다. 짧은 시간에 집중됐던 기록적인 호우였기에 불가항력적인 측면도 있었다. 하지만 홍수조절이 가능한 적정 용량의 다목적댐이나 유수지가 있었다면 피해를 크게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댐 건설을 포함한 물 관리 정책은 매우 장기적인 과제이다. 수계별로 적정 용량의 다목적댐을 건설하면 홍수 가뭄 수질문제 등 급박한 상황에도 충분히 대처할 수 있고, 국토의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 물론 새로운 댐을 짓지 않아도 기존 시설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고 수요관리를 하면 단기적으로는 꾸려 나갈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물로 인한 중대한 상황이 닥친다면 즉각 반응하고 시정할 길은 없다.
자연환경 보전에 대한 목소리는 갈수록 힘을 얻는 데 반해 댐 건설은 외면당하는 현실은 냉정히 반성해 볼 필요가 있다. 물론 지금까지의 대단위 국토개발에서 여러 가지 잘못된 점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국토개발을 보는 관점이 한쪽으로만 치우치는 일은 마땅히 경계돼야 한다.
개발과 보전의 조화는 결코 불가능하지 않으며 마주보고 달리는 기차도 결코 아니다. 이 둘은 풍요하고 쾌적한 미래를 위한 동반자 관계이며 대화와 협력을 필요로 한다. 개발의 시급성, 규모의 적정성 등을 따져 환경과 생태를 충분히 고려해 친환경적으로 개발하면 된다.
사람이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고 홍수마저도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서는 ‘물, 댐 그리고 환경은 손을 잡고 나가야 하며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수도권 2000만 주민이 홍수나 가뭄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바탕이 소양강댐과 충주댐이라는 커다란 ‘물 저금통’에 있음을 상기시키고 싶다.
유양수 한국수자원공사 물관리센터 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