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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8월의저편 228…강의왕자(4)

입력 | 2003-01-27 18:59:00


바늘 끝이 오른팔 안쪽 제일 부드러운 곳으로 파고든다. 아프지 않다. 몸 여기저기의 아픔에 비하면 주사 바늘의 아픔 따위는 모기에 물린 것이나 진배없다. 이런 몹쓸! 용하는 알고 있는 온갖 욕설을 늘어놓으며 아픔을 이겨내려 했다. 제길! 이런 쳐죽일 놈! 잡귀! 개자식!

“저, 전염되는 일은…” 인혜는 조그만 목소리로 물었다.

“그럴 염려는 없습니다. 단독은 전염되지 않습니다”

며느리는 전염될까봐 걱정하고 있었단 말인가, 하기야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젖먹이가 있으니. 용하는 우근의 얼굴을 보았다. 두 눈이 여느 때보다 거뭇거뭇하고, 조그만 볼은 애처롭다. 말해주고 싶은데. 걱정 마라, 아버지는 금방 괜찮아진다, 옆집 영일이하고 놀다 와라. 손을 내밀자 조그만 두 손바닥으로 조개껍질처럼 감쌌다. 왜 이렇게 차갑냐, 유리보다 더 차갑다, 물에 담갔었냐?

“안정을 취하고 미꾸라짓국을 끓여 주세요. 그리고 약은 가지러 와야 되겠습니다”

주사기를 알루미늄 통에 집어넣는다. 청진기를 접는다. 검정 가죽 가방을 닫는다. 가방을 들고 일어선다. 드르륵,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유리문이 열린다. 용하는 유리 너머로 거리를 내다보았다. 땅에서 바람이 불어 오르고 있다. 소용돌이치는 모래 먼지에 의사의 가운이 펄럭이며 두 다리가 보이지 않았다. 쌩∼쌩 휭∼휭. 갑자기 피곤이 밀려왔다. 그러나 아픔이 피로를 굴복시켜 몰아낸다. 아이고! 소리를 질렀는데, 정작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누군가가 뒤통수를 눌러 물에 얼굴을 처박고 있는 것 같다. 쌩∼쌩 휭∼휭, 아픔, 피로, 추위가 몸 속에서 난투극을 벌이고, 쌩∼쌩 휭∼휭.

“이런 데 누워 계시면 몸에 안 좋습니다. 아버님, 지 어깨 잡으이소. 위험하니까, 천천히, 아, 그렇게예. 팔도 지 목에 두르이소, 그냥 마 기대이소, 됐습니까? 일어납니데이, 으자, 일어섰습니다. 걷습니데이, 오른발 왼발 오른발 왼발, 도련님, 문 좀 열어주이소, 오른발 왼발 어머님한테도 알리고예!”

우근이 마당을 가로질러 집안으로 뛰어들자, 아기를 안은 희향이 건넌방에서 나왔다. 잠이 온다. 그 주사에 수면제라도 들어 있었나? 용하는 자기 자신의 목소리도 들을 수 없고, 발바닥으로 땅을 느낄 수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