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국민적 의혹은 모두 정치권이 이슈화한 것으로, 대통령선거 과정에서 나온 무차별적인 여야 공방의 산물이다. 여야는 대선 후에도 대상에 이견은 있지만 한 목소리로 의혹 규명을 외쳤고, 그 와중에 대통령직인수법안 처리가 진통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검찰 수사가 시작되자 관련 정치인들은 일제히 소환에 불응함으로써 정치인의 ‘두 얼굴’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줬다.
현대전자 주가조작과 관련한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된 국민통합21 정몽준 의원부터 설 전에 출두하라는 통보를 받고도 미적거리는 분위기라고 한다. 두 달 전만 해도 유력한 대선후보였던 그의 이 같은 태도는 떳떳하지 못하다. 주가조작은 다수의 투자자와 국민경제에 막대한 피해를 끼친 사건인 만큼 진실을 밝힐 책임이 그에겐 있다.
국가정보원 도청의혹을 제기한 한나라당 정형근 김영일 이부영 의원과 이들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한 민주당 김원기 이강래 의원의 경우는 더욱 심하다. 구두통보를 받고도 한 사람도 출두하지 않자 검찰이 마침내 소환장을 보내기에 이르렀다고 하니 정치인들의 ‘법 무시’ 또는 ‘법 경시’ 풍조가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느낌이다.
의혹을 제기하고 증폭시킨 당사자인 정치권이 수사에 협조하지 않고서는 진상이 드러날 수 없는 게 상식이다. 그런데도 정치권은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목소리만 높이면서 조사엔 꼬리를 빼고 있으니 무책임하고 믿을 수 없다는 비난을 면키 어렵다.
이번만이 아니다. 입만 열면 검찰 개혁과 독립을 부르짖는 정치인들은 언제나 ‘말 따로 행동 따로’다. 국회 회기 중에는 면책특권을 악용해 수사를 피하고 비회기 중에는 소환에 불응하는 게 체질화돼 있다.
검찰의 홀로서기는 정치인들의 상습적 법 집행 회피를 근절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정당한 법 집행을 하면서 정치권 눈치나 사정을 조금도 살필 이유가 없다. 그에 앞서 정치인 스스로 당당하게 법 집행에 응하는 것이 공인으로서의 의무이자 도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