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1000가지의 입맛’을 가졌다고 소문난 주방장이다. 입맛에 편견이 없기 때문에 세계 어느 나라의 음식이건 무리 없이 ‘간’을 잘 소화해 내 ‘다국적 요리사’라는 별칭도 붙었다.
서울 강남구 청담동 샌드위치 전문점 ‘더 카페’의 수석주방장으로 일하고 있는 장정은씨(30·여)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그의 인생은 음식솜씨보다 더 미묘하다. “계속 은행에 다녔더라면 지금쯤 연봉 20만달러(약 2억4000만원)를 노려볼 수 있었겠죠. 하지만 오늘의 저는 연봉 2400만원에 너무나 만족합니다.”
장씨는 원래 미국 10대 은행으로 꼽히는 버지니아주의 선트러스트 은행 본사 대부계에서 97년부터 3년간 행원으로 근무했다.
“그러나 사무실에 앉아 사람들과 ‘머리싸움’을 벌이며 대출허가를 내주는 직업에 몰두하는 것이 따분하고 피곤했습니다.” 장씨의 전직(轉職) 이유.
당시 1억원이 넘는 연봉을 받으며 오직 9시 출근, 오후 5시 퇴근하는 일상을 반복하며 살던 장씨는 어느날 ‘미치도록 요리를 하고 싶은’ 숨겨진 본능을 발견했다.
무작정 지역신문에 난 구인광고를 보고 근처의 그리스 식당으로 달려가 시급 6달러짜리 주방보조요원에 취직했다. 당시 버지니아주의 시간당 최저임금은 5.50달러.
그는 직업 외교관(현직 대사)인 아버지를 따라 미국 캐나다 태국 스페인 사우디 등에서 모두 23년을 살았다. 어디에 살건 그 나라 음식을 좋아했고 취미로 요리를 익히는 날이 많았다.
그는 “여러 대륙의 나라에 살며 언어뿐 아니라 요리도 현지인 수준으로 연마했다”고 했다.
국내외 10개 초중고교를 거쳐 버지니아주의 윌리엄 앤드 메리 칼리지에서 외교학을 전공했다.
그는 “‘프라이팬과 식판이 날아다니는’ 주방의 분위기는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국내외를 막론하고 군기가 드셌다”며 견습요리사 시절을 떠올린다. 버지니아주 현지의 작은 요리학원에서 실무를 다듬은 그는 2001년 9월에 귀국, 서울 힐튼호텔에서 본격적인 국내 주방장 생활을 시작했다.
무보수로 ‘실습’에 나선 그는 2002년 3월 서울 중구 무교동 파이낸스센터의 한 이탈리아음식점으로 자리를 옮겼고, 지난해 10월부터는 청담동 ‘더 카페’에서 200만원의 월급을 받으며 일하고 있다.
최근에는 향신료가 듬뿍 들어간 동남아식, 이스라엘 전통 콩을 갈아넣은 중동식 샌드위치를 개발해 인기를 끌고 있다.
“6시간 동안 의자에 앉아 서류 들여다보며 입씨름하는 것보다는 10시간씩 선 채로 ‘창작’에 몰두하는 게 훨씬 즐거워요.” 그에게 음식 만들기는 예술 이상의 창조였다.
조인직기자 cij199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