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대형 할인점에 가면 한겨울인데도 수박을 흔히 볼 수 있다. 그 중에서도 씨 없는 수박은 단연 비싼 과일 중 하나.
직업 탓일까. 씨 없는 수박만 보면 정관절제술이 연상되고 역시 씨는 수박 씨앗이나 사람 씨앗이나 모두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씨가 없는 수박이 더 맛있고 먹기에 편리하듯, 정자 없는 남성이 여성 입장에서 대하기 편하고 정력이 더 왕성할 수도 있기 때문. 정관수술을 하면 정력이 약해진다는 말은 말 그대로 ‘새빨간 거짓말’이다. 정관절제술은 단지 아기를 못 낳게 정자 생산 기능만 정지시키는 피임수술일 뿐 다른 영향이나 해는 전혀 없다.
의료계에서 정관수술을 받은 남자의 정액을 ‘씨 없는 개량종 수박’으로, 보통 사람의 정액을 ‘일반 재래종 수박’으로 비유하는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씨 없는 수박은 그 모양, 색깔, 향기, 크기 등에서 일반 재래종 수박과 다를 것이 없다. 다만 씨가 없을 뿐이다. 씨가 없기 때문에 먹기에 편리하고, 씨에 소모되는 영양분이 속살에 투입되므로 개량종보다 더 단 것이 특징이다.
정관절제술을 받은 남자의 정액도 마찬가지다. ‘아기 씨’인 정자만 만들어지지 않을 뿐, 다른 모든 조건은 수술을 받지 않은 사람과 하등의 차이가 없다. 오히려 씨 없는 수박이 먹기 편하고 단 것처럼 불임술을 받고 나면 성생활이 편리해지고 정력이 더 왕성해진다. 상황에 따라서 아기를 더 원 할 때에는 다시 복원하는 안전장치도 있다.
하지만 정관수술을 한 후 절대 조심해야 할 일이 있다. ‘씨 없는 수박’인 줄 알고 마구 ‘작업’에 나섰다간 큰 낭패를 볼 수도 있는 것. 수술 후 적어도 12회 이상의 정자 배출이 있어야 수술 전에 만들어져 있던 정자가 모두 없어지기 때문이다. 간혹 40대인 경우에 정관수술을 하고 나서 정력감퇴를 호소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전혀 의학적 근거가 없다. 만약 씨 없는 수박이라고 놀리는 사람이 있다면 이젠 이렇게 대꾸하자. 니들이 씨 없는 수박 맛을 알아?
박천진/ 강남 J 비뇨기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