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KT&G체육관에서 한창 훈련중인 김남순 트레이너를 찾아온 남편 김철수 트레이너와 딸 세연양이 배구공을 든채 활짝 웃고 있다. 수원=강병기기자
‘부부는 서로 마주 보는 사이가 아니라 함께 같은 곳을 보는 사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 대로라면 사랑과 이해 속에서 같은 길을 걷는 부부야말로 이상적인 커플이다.
그러나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남편은 남편대로, 아내는 아내대로 크던 작던 불만을 안고사는 것이 대부분의 부부다. ‘함께 같은 곳을 보며 살아가기’란 그만큼 힘들다.
요즘 한창 열기를 더해가고 있는 배구 슈퍼리그. 그 백색의 코트에 이상적인 커플이 있다. 한국전력의 김철수(33)와 KT&G의 김남순(33) 부부 얘기다.
딸 하나를 둔 동갑내기 부부. 여기에 새카만 후배들과 어울려 코트를 누비는 남녀 배구선수. 같은 길을 가면서 오순도순 단란한 가정을 꾸려가고 있는 행복만점의 커플이 이들이다.
같은 분야에서 일하는 게 좋아보일 수도 있지만 바깥 일을 잘하면서 가정 생활까지 실속있게 꾸려나가기는 사실 힘들다. 특히 체력유지를 위해 끊임없이 훈련을 해야하는 운동선수에게는 더욱 그렇다.
김철수-김남순 부부는 왜 이처럼 고난의 길을 택했을까.
“98년 결혼 후 한일합섬에서 은퇴하고 딸을 낳은 뒤 2년간 집에서 쉬었어요. 하루는 김형실 KT&G 감독님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우승을 해야겠는데 내가 꼭 필요하다는 말이었습니다. 배구를 떠났다고 생각했는데 이 전화를 받고 나니 다시 배구공이 눈 앞에 어른거리지 않겠어요?”
KT&G의 트레이너 겸 주공격수로 활약중인 부인 김남순. 그는 98년 3월 은퇴했을 때까지 국가대표팀에서 뛰며 아시아 최고의 오른쪽 공격수로 활약한 스타 출신이다. 1m80의 큰 키에 점프와 순발력이 뛰어나 국내 여자선수로 처음 백어택을 구사한 주인공이기도 하다. 이런 그였으니 배구에 대한 미련이 많았을 수밖에….
“주위에서 코트 복귀를 권유하자 집사람 마음이 흔들리는 것을 눈치챘습니다. 사실 운동만 했던 사람이라 살림이 서툴 줄 알았는데 요리도 잘하고 알뜰살뜰 신혼 재미가 있던 터라 선수로 다시 뛰지 않았으면 했지만….”
한국전력의 트레이너 겸 선수로 뛰고 있는 남편 김철수의 포지션은 센터. 1m88으로 남자선수로는 비교적 단신이지만 점프력과 스피드가 뛰어난 특급 센터로 활약하고 있다.
둘이 벌면 그만큼 돈이 더 모일까.
“집사람이 선수생활을 하면서부터 돈이 모이기보다는 오히려 더 쓰는 편입니다. 슈퍼리그 기간중 한사람 월급은 거의 모두 우리 둘의 보약 값으로 다 들어가니까요.”
‘키크고 싱겁지 않은 사람 없다’는 말은 이들에게도 해당되는 말이다. 스타커플이니 뭔가 특별한 사랑 이야기가 있으려니 기대했는데 막상 듣고보니 싱겁기 짝이 없다. 나란히 청소년대표로 활약하면서 김남순을 기억하고 있던 김철수가 상무에서 군생활을 하던 중 뜬금없이 전화를 한게 계기가 돼 데이트를 하게 됐고 2년간 연애 끝에 결혼에 골인한 게 전부란다.
김철수는 배구 명문 익산 남성고와 성균관대를 나온 스타 출신. 그러나 아내 김남순의 명성이 워낙 화려해 ‘김철수 부부’보다는 ‘김남순 부부’로 불리는 일이 더 많았다. 김철수는 처음엔 불만이 많았지만 이런 상황이 오히려 자극제가 됐다고 실토했다.
김철수가 배구 시즌개막을 앞두고 머리를 삭발하기 시작한 것은 결혼 직후인 98년 겨울부터. 물론 후배 선수들의 분발을 독려하는 의미가 컸지만 아내보다 더 잘해보자고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의미도 없지 않았다고. 그러기를 벌써 5년. 요즘은 아내가 직접 이발기구를 들고 머리를 박박 밀어준다.
“집사람이 운동을 다시 시작하면서 동반자 겸 경쟁자 사이가 됐습니다. 개인적으로나 팀으로나 집사람보다 좋은 성적을 올리기 위해 노력했지만 잘 안되더라구요.”
김남순은 지난해 슈퍼리그에서 여자부 최우수공격수의 영광을 차지하며 소속팀을 준우승시켰다. 그리고 이번시즌에도 KT&G의 주전 공격수로 활약하며 3강이 겨루는 2차리그 진출을 앞두고 있다. 반면 김철수의 소속팀 한국전력은 남자부에서 4강이 겨루는 2차리그 진출에 실패했다. 이들에게는 요즘 기쁨이 하나 더 늘었다. 이모의 보살핌 속에 무럭무럭 자라난 첫딸 세연(5)이 때문이다. 또래에서 달리기라면 1등을 도맡아 하는데다 민첩한 몸놀림이 벌써부터 운동선수로 대성할 기미를 보인다.
이들 커플은 세연이를 아빠 엄마를 능가하는 배구선수로 키울 생각이다. 태극마크를 단 세연이가 펑 펑 강타를 터뜨릴 모습을 떠올리면 짜증도, 삶의 고단함도 눈녹듯이 사라진다는 게 두 사람의 말이다.
일찌감치 올 시즌 경기를 끝낸 김철수는 이제 세연이를 데리고 아내를 응원하러 다닐 참이다. “여보, 파이팅!” “엄마, 파이팅!” 정말 부러울 만큼 단란한 배구부부다.
권순일기자 stt77@donga.com